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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을 기다린 산

 

르포1 _ 노르디스크(NORDISK) Trek·Camp·Live

북한산

 

세 떨기 꽃송이…

천하에 둘도 없는 절경이로세!

 

눈부신 화강암이 푸른 하늘빛을 압도하는 곳, 북한산이다. 인수(仁壽), 백운(白雲), 만경(萬景)

 세 봉우리가 마치 세 개의 뿔과 같이 우뚝 솟아있다 하여 삼각산(三角山)이라 했다.

또한 화산(華山), 화악(華岳)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게다가 오악(五岳) 중 국토 중앙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중악(中岳)이라 찬미했던 곳이다.

세 떨기 화강암 꽃송이가 하늘을 찌를 듯한 그 가없는 모습은 서울의, 대한민국의 진산이 아닐 수 없다.

글 · 강윤성 편집장  사진 · 정종원 기자  협찬 · 노르디스크

 

서울의 진산, 북한산(=삼각산)은 역사 속의 산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북한산은 그 시대의 한복판에 자리했다. <동국여지승람>은 “삼각산은 양주와의 경계에 있는데 화산이라고도 하며, 신라에서는 부아악이라 하였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 온조가 남쪽에 와서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을 살펴보았는데, 곧 이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북한지>는 “삼각산에는 인수(仁壽), 백운(白雲), 만경(萬景) 세 봉우리가 있는데, 깎아 세운 듯이 우뚝 솟은 모양이 마치 세 개의 뿔과 같았으므로, 삼각산이란 이름을 붙였다. 일명 화산(華山) 또는 화악(華岳)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산세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평강의 분수령에 이르러, 서쪽으로 한줄기 지맥이 뻗어나가 연봉이 중첩하고 기복이 이어지다가 양주 서남쪽에 이르러 도봉산이 되는데, 이 산(삼각산)이 바로 서울의 진산이다.”라고 찬미했다.

 

서울을 품은 천하의 절경, 삼각산

이처럼 북한산은 예부터 부아악, 삼각산, 화산, 화악이라 불렸다. 부아악(負兒岳)은 삼국시대 사용되던 명칭으로, 인수봉이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남아의 성기를 상징하는 인수봉을 중요시한 남아선호사상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화산(華山), 화악(華岳)은 삼각산 세 봉우리가 부처님의 꽃인 연꽃을 닮았다는 연화산(蓮花山)의 준말을 뜻한다. 게다가 오악(五岳) 중 국토 중앙을 대표하는 명산이라 하여 중악(中岳)이라 칭하기도 했다. 오악은 삼각산(중악), 지리산(남악), 구월산(서악), 금강산(동악), 백두산(북악)을 뜻하니, 금강산과 백두산에 버금가는 산이 바로 삼각산이다.

삼각산이란 이름이 북한산이 된 것은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지명 개편 때문이다. 이때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을 가리킨 ‘북한산’으로 혼용되다가,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공식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2003년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0호’의 공식 명칭은 여전히 삼각산이다.

북한산은 천년에 걸친 다양한 지명만큼이나 각 시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초기 문화의 발상지이자 삼국세력의 경합지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군사적 요새로서 불교신앙이 활발하게 타올랐던 곳이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진산으로 천혜의 방어기지였다.

무엇보다 북한산은 목은 이색(1328~1396)이 다음과 같이 찬미했듯이 천하에 없는 절경으로 수천 년 동안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아득한 태초에 깎아 세운 세 봉우리

하늘을 가리키는 신선의 저 손바닥 천하에 없는 절경이로세

삼각산의 참 모습이야 어릴 적부터 들어서 알았었지.

‘이 산 뒤에 양옥환이 산단다’고…

 

절세미인 양귀비가 산다는 선계

양옥환이란 당나라 현종의 비로 절세미인을 뜻하는 양귀비의 본명이다. 양귀비가 산다는 천궁이자 선계가 바로 삼각산인 셈이다.

지난 9월 9일 북한산으로 향한다. 올해 13번째 발생한 태풍 링링이 강한 바람으로 국토를 휩쓸고 러시아로 빠져나간 이튿날이다. 북한산의 천하에 없는 절경을 엿보려면 어느 코스가 가장 좋을까, 고민 끝에 비봉에서 백운대에 이르는 주능선을 잇기로 했다. 들머리와 날머리는 산세의 험준함과 산행시간을 고려하여 비봉과 백운대 최단코스인 이북5도청(비봉탐방지원센터)과 우이동(백운대탐방지원센터)을 선택했다.

불광사역에서 정종원 기자를 만나 버스를 타고 이북5도청 앞에서 내려 비봉탐방지원센터로 향한다. 고급 빌라들이 자리한 주택단지를 지나 산 입구에 다다르니 왼쪽에 연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산길에 들어서니 산내음이 가득한 계곡길이 이어진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이 금세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잠시 후 관음기도 성지로 유명한 금선사 목정굴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목정굴로 통하는 돌계단을 올라서니 바위로 조성된 협곡 막다른 곳에 석굴이 자리하고 있다. 목정굴 내부에는 수월관음보살이 다소곳하게 앉아 환한 미소로 맞이해준다. 금선사는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가 1500년 동안 세워져 있던 비봉, 그 봉우리 아래 자리한 아늑한 산사다. 태조 이성계의 국사인 무학대사가 새 왕조의 도읍지를 정한 후 창건했다는 사찰로, 조선 순조의 탄생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금선(金仙)이란 금빛의 신선, 즉 부처를 말하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이름인가.

금선사를 벗어나 비봉으로 향한다. 주릉에 올라서니 향로봉과 비봉 갈림길이다. 서쪽으로 족두리봉과 향로봉이 장대한 암릉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니 비봉이 불끈 솟아있다. 암릉의 가장 완만한 슬랩과 침니를 거쳐 정상에 올라선다. 그 바위 정점,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진흥왕이 555년 한강을 차지한 후 세운 진흥왕순수비(북한산비) 복제품이 세워져 있다. 진품(국보 제3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비봉(碑峰)이란 이름 또한 비석이 세워진 곳을 뜻한다.

 

눈부신 화강암이 빚은 거대한 성채

비봉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그야말로 거대한 성채다. 시야 끄트머리에 구름을 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눈부신 화강암 봉우리가 앞자리를 차지한 노적봉과 더불어 하늘을 찌를 듯한 웅장한 자태로 솟아있다. 그 백운대 정점을 향해 비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진 장대한 능선이 문수봉에서 솟구쳤다가 암릉이 되어 내달린다. 게다가 주릉을 향해 서쪽에는 의상능선의 의상봉, 용혈봉, 나월봉, 나한봉이 불끈 불끈 솟아 내달리고, 멀리 동쪽에는 칼바위능선이 병풍을 이룬다. 하늘의 푸른빛조차 압도하는 눈부신 화강함의 험준함과 수려함이 빚은 천궁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동명 정두경(조선 중기 문신)이 삼각산을 바라보고 “하늘높이 치솟아 북두칠성을 뚫었네. 당당히 솟아올라 오악과 견주니 천지·음양의 두 세계를 지니고 있네.”라고 칭송했겠는가.

“이래봬도 북한산이 한북정맥 최고의 산이에요. 한북정맥이 도봉산을 빚은 다음 남하해서 우이령을 거쳐 노고산으로 빠져나가기 직전에 온 힘을 짜내서 빚은 산이잖아요. 그래서 북한산 이후로는 큰 산들이 없어요.”

오래전 한북정맥을 탔던 정종원 기자의 예리한 설명이다. 삼각산의 장엄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가 바로 비봉을 위시한 주능선 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삼각이 아니라 사각이다. 그 신비로운 바위 성채가 산행 내내 눈길을 잡아챈다.

비봉을 내려와 주능선을 500m 걷자 숲 너머로 직사각형의 집채만 한 바위덩어리가 다른 바위 위에 얹혀있다. 사모바위다. 그 특이한 모습이 마치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紗帽)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 이정표 보니, 1968년 1·21사태 당시 김신조 일행이 여기 바위 아래 숨어있었다고 하네요. 일명 김신조바위랍니다.”

숲길을 걷다보니 나지막한 암릉 정상에 올라선다. 승가봉(567m)이다. 위압감이 하나 없는 마당바위 같은 평온함을 느껴지는 곳이다. 왔던 길을 뒤돌아보니 새하얀 빛깔의 사모바위와 비봉, 향로봉이 울창한 숲 위로 징검다리마냥 솟구쳐 있다. 승가봉이란 이름은 756년(신라 경덕왕 15)에 창건된 인근의 승가사(僧伽寺)에서 유래한다.

 

천혜의 요새 이룬 주능선 성곽길

승가봉에서 두 암반 사이에 난 자연 석문을 통과하자 문수봉으로 향한 의상능선의 암봉들이 병풍을 치고 있다. 문수봉 갈림길(쉬움, 어려움)에서 곧장 암봉을 직상하는 어려운 코스를 오른다. 수직벽을 오르는 가파른 철다리가 아슬아슬 암봉을 타고 넘나든다. 쇠 난간을 붙들고 힘겹게 암봉에 올라섰건만, 문수봉 정상은 암릉 끄트머리, 한참이나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문수산(727m) 정상에 올라서니 노적봉 뒤편으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세 봉우리가 코앞에 드러난다.

문수봉에서 백운대까지는 북한산성 성곽길을 따른다. 북한산은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산 전체가 하나의 성(城)이다. 험준한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고개마다 성문이 세워져 있고 성곽이 이어진다. 1711년(숙종 37년)에 세워진 북한산성이다. 북한산은 그 자체로 서울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닐 수 없다.

문수봉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자 대남문(683m)이 나온다. 2020년 5월 2일까지 한창 해체·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산성을 따라 300m 내려서자 우진각 지붕 형태의 정면 3칸의 문루를 이룬 대성문이 반겨준다. 멋들어진 성곽 길을 따라가면 북한산 정상부가 클로즈업 되듯 눈앞에 드러난다. 염초봉,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용암봉이 한데 어우러져 불꽃처럼 솟아있다. 용암문과 동장대 우측 너머로 영봉을 비롯해서 도봉산 오봉까지 한눈에 보인다.

보국문에 도착한다. 상부에 문루조차 없는 작은 평문이다. 보국문에서 칼바위능선 갈림길을 지나자 대동문이 나온다. 높이가 9척에 이르는, 정면 3칸의 문루를 갖춘 거대한 성문이다. 성문 앞은 너른 공터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인근에는 중층을 이룬 웅장한 동장대가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금위영의 장수가 주둔하며 지휘를 하던 곳이다. 지휘소답게 조망이 확 트인다. 주능선의 대성문, 보현봉, 대남문, 문수봉, 청수동암문, 나한봉, 나월봉, 남장대지, 의상능선 등이 한눈에 보인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백운대로 향한다. 문수봉에서 백운대 위문까지는 산성을 따라가는 평탄한 숲길이다. 용암사지 석탑이 덩그러니 놓인 옛 북한산장을 지나 용암문에 이른다. 용암문 역시 보국문과 같이 상부에 문루가 없다.

노적봉과 만경대 사이의 산자락을 타고 위문으로 넘어간다. 서쪽으로 난 계곡 양편에 의상봉과 원효봉이 거느린 능선이 양팔을 벌리고 있다. 북쪽 정면에는 백운대의 아스라한 수직벽이 치솟아 있다. 드디어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안부에 위치한 백운봉암문(위문)에 다다른다. 북한산성의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암문이다.

 

설악과 지리 못지않은 백운대의 광대한 조망

백운대를 오른다. 조망을 하며 쉬어가기를 여러 번. 가파른 암반을 올라 정상에 선다. 클라이머들의 성지로 불리는, 불끈 치솟은 인수봉에 꽂혔던 눈길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비록 높이는 836m에 불과하지만 설악과 지리 못지않은 광대한 조망이 펼쳐진다. 서울과 경기를 한눈에 아우르는 풍광이다. 조선조 태조가 무학대사와 올라 서울을 도읍지로 정했다는 산이다. 북한산의 유명세는 외국인들에게도 대단하다. 하루 동안 산에서 만난 30여 명의 등산인 중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다.

인적 없는 백운산장에 내려선다. 개 한 마리가 반겨줄 듯 마당을 맴돌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곳은 1924년에 터를 닦은 한국 최초의 산장이다. 그동안 수많은 등산 동호인들이 산악운동의 역사를 지핀 곳이다. 특히 인수봉 조난사고를 비롯해서 등산인들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구조본부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비둘기 샘에서 목을 축인 후 인수훈련장에 내려선다. 오랫동안 21야영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기자 역시 20대 젊은 시절 암벽등반을 위해 수년간 매주 찾았던 추억어린 야영장이다. 당시 각 산악회마다 찜하고 닦아놓은 수많은 터는 사라지고, 현재는 17개의 사이트만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태풍이 훑고 지나간 텅 빈 야영장에 텐트를 친다. 주변에서 버섯을 채취하여 돌아가던 인수암의 한 스님이 사람이 반가운 듯 말을 건넨다.

“좋은 자리 잡으셨네요. 오늘 이곳에서 하룻밤 지냅니까?”

이내 사위가 어두워진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몸을 인수봉 계곡 자락에 눕힌다. 가만히 눈을 감자 백운대를 위시한 뭇 산들이 앞 다퉈 화톳불처럼 활활 피어나 별이 된다. 젊은 시절 소주잔을 돌리며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귓전에 들여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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