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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산행 | 중국 강서성 명월산·무공산

 

쫄깃하게 잔도 한 번 걸어보실랍니까

청도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동남쪽 내륙에 있는 강서성. 성 남서쪽의 도시 의춘에 가면 명월산과 무공산을 오를 수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산은 아니지만 국가삼림공원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길에 아래로 보였던 빼곡한 대나무 숲과 산봉우리에 거대하게 펼쳐진 푸르른 초원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난 잔도가 기억에 남는다. 거대한 자연과 위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글 · 서승범 객원기자  사진 · 정종원 기자  협찬 · (주)여행투어

 

INTRO.

산행을 마치고 만찬까지 즐겁게 마치고 돌아온 호텔. 사전에 근처에서 작은 공연이 있다고 들었다. 공연에 대해 아는 정보는 쇳물과 불꽃이란 단어가 전부였다. 일행 중 일부는 숙소로 들어갔다. ‘그래도 불꽃과 화약의 나라 아닌가’ 싶은 마음과 ‘이 작은 시골 이 작은 무대에서’란 마음이 동시에 들어 출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찮으면 맥주 마시러 내뺄 생각으로. 장소는 호텔 부근, 노거수가 있는 작은 광장이었고 관중은 놀거나 걷거나 그냥 거기 있던 중국 사람들. 그냥 돌아가고 싶기도 했지만, 돌아갈 명분을 찾기 위해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거기서 인생 최고의 불꽃놀이를 보았다. 타철화(). 철을 때려 피운 꽃, 불꽃놀이 이름이다.

 

국가삼림공원의 스케일

여행의 시작은 공항에서 시작된다. 그 설렘을 즐기고 싶어 약속 시간보다 훨씬 여유 있게 공항을 향했다. 버스가 공항고속도로에 접어드는 순간 문득 발이 눈에 들어왔다. 오갈 때나 시내를 구경할 때 신는 빨간 캔버스화, ‘아차, 등산화를 안 챙겼구나’ 싶었다. 신발장 위에 잘 모셔두고 버스 도착 예정 알람이 울려 서둘러 나오면서 깜빡했다. 돌아갈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거나 버티거나. 중국에서 시간이 되면 사고, 아니면 버티기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여권이나 카메라 메모리 카드 같은 게 아닌 게 어디냐,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산인데 신발이 불편하면 어떡하지’ 고민은 첫 번째 기내식을 비우면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산동성 청도부터 강서성 의춘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이다. 아무래도 남서쪽으로 내려오니 온도는 높아졌고 공기는 후텁했다. 의춘은 처음 들어보는 도시였다. 중국이라고 해봐야 아는 도시 이름이 열 손가락을 넘기지 못하니 모른다고 작은 도시는 아니다. 강서성에서 크기로나 인구로나 손에 꼽히는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큰 도시다. 일단 도시의 크기가 166,900km2, 우리나라 넓이가 100,188km2이니 짐작해보시라. 규모보다 부러운 건 이 넓이의 50%가 숲, 35%가 산지라는 점이다. 그 산지의 대부분은 도시 서쪽에 위치한 라소산맥이다. 라소산맥은 호남성과 경계를 이루기도 하는데, 최고봉은 2,000m 급이고 주봉들은 1,000m를 훌쩍 넘긴다. 명월산과 무공산 또한 라소산맥의 봉우리들이다.

명월산은 일단 ‘상복’이 많다. 국가급 풍경명승지, 국가 AAAA급 관광지, 국가삼림공원, 국가지질공원, 국가자연유산 등 명월산이 걸치고 있는 수식어들이 다양하다.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이런 수식은 ‘공기 중 음이온 함량이 국가표준치의 35배’와 같은 구체적인 수치로 다가온다. 실제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산속에 머무는 내내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쉬고 싶었으니 몸이 먼저 반응한 게 아닐까 싶다.

산의 생김새를 보려면 봉우리에 올라야 하고, 오르려면 도리없이 고도를 다리로 극복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르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600m 정도까지 올라 커다란 경사가 없는 잔도를 걷게 된다. 경사로를 힘들게 오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걷는 길이 잔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절벽 옆구리에 길을 내어 사람이 걸을 수 있도록 난간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데, 마치 멀리서 지도를 놓고 절벽 부분에 자 대고 줄 그어 줄 따라 만든 것처럼 간혹 나오는 계단을 제외하면 죄다 평지다. 덕분에 캔버스화로도 일정을 소화하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허공을 걷는 즐거움과 허공에 길을 내는 고단함

명월산 잔도는 명월산의 옆구리께를 따라 길게 길게 이어졌다. 작은 봉우리를 한 바퀴 도는 데 두어 시간 남짓 걸렸다. 내내 잔도를 따라 걸었다. 멀리서 봤을 때 낭떠러지 같은 벽에 가느다란 선처럼 이어진 길은 위태로워 보였다. 실제로 걸을 때는 불안한 느낌이 단 1도 없다. 사실 몸 상태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만나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덕인지도 모르겠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길, 눈에 들어오는 산사면의 풍경은 놀라웠다. 그 너른 산을 메운 건 대나무였다. 대나무치고는 제법 굵어서 ‘아름드리’라고 부를 만한 대나무들이 바늘처럼 빼곡하게 꽂힌 듯 자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경험한 대나무 군락지 혹은 대나무 숲과는 달랐다. 팬더가 오면 엄청 좋아하겠다는 농담이 오가자 팬더의 고장 쓰촨성이 여기서 멀지 않다는 가이드의 답이 돌아왔다. 대륙에서는 바로 옆이지만 직선거리로 1,000km가 넘는다.

잔도의 미덕은 새로운 느낌과 시선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산을 발아래 두고 그 위를 걷는 게 아니라 산을 곁에 두고 산과 나란하게 걷는 느낌이다. 암벽에 매달려 허공을 딛고 선 느낌에 비할 건 아니지만 허공을 걷는 듯했다. 다르게 서면 시선이 달라지고 풍경도 새로워진다. 절벽의 허리를 따라 굽이굽이 산을 감아 타는 동안 건너편 봉우리는 안개 속에 숨었다가 나타나고 감탄하다 보면 다시 사라지곤 했다.

무엇보다 잔도의 미덕은, 적어도 처음 보는 나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곳에 믿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절벽을 걷다, 중국 잔도공’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쉰넷의 잔도공 샤더첸의 이야기다. 인부들 밥을 해주던 일을 하던 아내는 딸의 출산을 도우러 떠났고, 샤더첸은 떠나는 아내를 뒤로 하고 동료들과 절벽을 오른다. 절벽에 구멍을 뚫고 지지대를 설치한 다음 지지대와 지지대 사이에 바닥을 깔고, 다시 새로운 구멍을 뚫으면서 조금씩 전진한다. 무엇보다,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과 바닥에 깔 시멘트 혹은 콘크리트는 누가 들고 왔을까.  동네 뒷산에 길 내는 것도 아니고, 깊은 산 가파른 벼랑에 마디 진 길을 한 마디 한 마디 놓는 고단함이 화면 밖까지 전해졌다. 걸어 두 시간이면 만드는 데는 2년쯤 걸리지 않았을까. 걷는 자는 고단함을 논하지 말라.

 

만한전석의 나라

무공산은 국가급 풍경명승구다. 우리로 치면 국립공원이란 뜻에 가까울 텐데, 어쨌거나 ‘풍경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생각하면 대략 맞다. 형산, 여산과 더불어 ‘강남 3대 명산’으로 꼽힌다. 역사적으로는 보다 남쪽에 있는 정강산이 의미가 있다. 현대 중국을 세운 모택동이 괴멸 수준의 수세에 몰렸다가 정강산에서 대장정을 시작해 2년 만에 전세를 역전시켜 국민당을 쫓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중국 현대사를 느껴보겠다면 정강산을, 대륙급 풍경을 보겠다면 무공산을 찾아야 한다.

케이블카를 두 번이나 타고 오른 곳은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원래는 팀을 빠르고 길게 갈 조와 천천히 짧게 갈 조로 나눠 진행하려 했으나 비까지 섞여 내리는 탓에 계획을 바꿨다. 원래 가려 했던 짧은 코스보다는 길고, 긴 코스보다는 짧은 제3의 코스로 다 같이 걷기로.

무공산 풍경의 압권은 정상부 능선의 거대한 초원이다. 지리산보다 조금 높은 백학봉(1,918m)의 모습도 멋있었지만 조금 내려와 만난 운중고원의 모습은 사진으로도 실제의 반 이상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 명월산의 기기묘묘한 절벽들이 병풍 속 산수화에서 나온 것이라면, 무공산의 초원은 컴퓨터 바탕화면을 옮긴 것 같았다. 그러니 무슨 생각을 하겠어, ‘저 푸른 초원 위에, 텐트나 치고 노닥거렸음 좋겠다.’ 우리만 그랬을까, 당연히 중국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원래 길게 가는 코스는 ‘무공산 캠핑기지’를 들르게 되어 있었다. 캠핑기지란 무엇이냐, 해발 1,600m 정도에 펼쳐진 60km2의 초원(참고로 여의도가 약 3km2다)이 펼쳐지는데 그 중 일부 초원 가득 형형색색의 자잘한 텐트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마치 단풍처럼. 절경에 놀라고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계단으로 1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박 배낭을 메고 손에 먹을 것을 싸들고 계단을 오르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만한전석. 108가지 요리가 올랐다는 청나라 때의 상차림이다. 차림이야 상황에 맞게 조금씩 달라졌을 텐데, 때로 전채와 후식까지 포함하면 300가지가 넘기도 했단다. 이유인즉슨, 청나라 황제가 만주족 귀족과 한족 고위 관리를 자금성으로 불러 연회를 베푼 것인데, 만주족 전통 음식을 바탕으로 중국 전통 궁중요리의 기본인 소주 요리와 남북방의 진귀한 요리들을 합쳐 상을 차렸다고 한다.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 단 한 번도 먹지도 보지도 못한 만한전석이 떠오른 이유는 명월산과 무공산에서 봤던 풍경 때문일 것이다. 무공산과 명월산을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성에서 준비한 만찬의 탁월한 맛도 어쩌면 거들었을 것이다. 또한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봤던 도시와 시골의 모습, 둘을 잇는 고속도로 너머의 풍경 또한 새로웠다.

귀국하자 친구가 물었다.

“어때? 좋냐? 갈 만하냐?”

“기회 되면 늦가을 단풍 좋을 때 다시 가고 싶다.”

 

OUTRO.

무대랄 것도 없었다. 공원 한구석에는 커다란 사발이 두 개 있었다. 광장의 조명이 꺼지자 그릇 안이 빨갛게 반짝였다. 맙소사. 그릇은 용광로였고 빨간 것 쇳물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키 정도 되는 커다란 주걱으로 쇳물을 퍼 돌담에 뿌렸고 쇳물방울들은 공중에 흩어지면서 그대로 불꽃이 되었다. 또, 한 사내가 쇳물을 공중에 툭 던지자 다른 사내가 삽으로 힘차게 쳤다. 야구 배팅 연습하듯. 타철화는 중국의 오랜 문화다. 호남성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지금은 여러 곳에서 쇳물로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오래 전 언젠가, 굵은 팔뚝의 사내들이 아마도 기나긴 노동 끝에 남은 쇳물과 힘을 끌어모아 스스로 즐거워지려고 위험을 무릅썼을 것이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사내들은 길턱에 걸터앉아 방화복을 벗고 땀을 훔쳤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면서 잔도공 샤더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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