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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양구곡 위에 솟은 그림 같은 산

화양구곡~가령산~무영봉~낙영산~도명산~화양구

 

화양구곡(華陽九曲)과 도명산(道明山). 금수강산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국토의 표상이라 할 만한 곳이다.

명승지 화양구곡에 비견할 만한 수많은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도명산의 풍광을 빚어낸다.

‘도사가 도를 깨달았다’는 곳이다. 게다가 산정에 서면 상학봉, 묘봉, 문장대, 천왕봉(1058.4m)에 이르는

속리산 국립공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발길 닿는 데마다 조망의 즐거움이 샘솟는 곳이다.

 

글 · 강윤성 편집장  사진 · 정종원 기자  협찬 · MSR

 

우리나라에서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은 으레 구곡(九曲)이나 팔경(八景)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가령산~무영봉~낙영산~도명산이 자리한 화양계곡 역시 화양구곡(華陽九曲)으로 소문난 명소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은거하면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동에 9곡을 이름 지었다고 한다. 화양계곡을 따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을 가리킨다.

이 화양구곡은 2014년 명승 제110호로 지정됐다. 수려한 자연 경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유교 관련 유적이 조화를 이룬 명승지로서 역사적, 환경적 가치를 두루 지닌 공간으로 평가를 받는다. 우암 송시열과 연관 있는 유적들이 계곡을 따라 남아있다.

 

화양구곡이 빚은 충북의 금수강산

가령산~낙영산~도명산 원점회귀 산행은 이 화양계곡에서 시작한다. 들머리는 자연학습원이다. 5월 30일 오전 10시. 군포에서 함께 내려온 경기클라이밍센터 박명숙, 이은정, 고선우 회원과 함께 산행에 나선다. 박명숙씨와 이은정씨는 톱클라이머일뿐만 아니라 산행 경험이 출중한 베테랑인 반면, 대학생 고선우씨는 초짜로 이번이 생애 첫 산행이다.

자연학습원 인근에 주차를 하고 화양동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에 하얀 바위들이 듬성듬성 흩여져 있다. 맑은 계류가 흐르는 곳에는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물길이 깊지 않아 성큼성큼 다리를 건너 숲에 들어선다.

산길은 초입부터 시종일관 오르막이다. 다리가 금세 묵직해진다. 고선우씨가 초장부터 지쳤는지 숨을 허덕인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 내려 보내야 할지 고민 끝에 산행을 그대로 진행한다. 누군들 처음부터 베테랑 산꾼으로 태어났겠는가. 이은정씨가 뒤에 딱 붙어 거북이처럼 천천히 이끈다. 설상가상 암릉이 나타나면서 길은 더 가팔라지고 거칠어진다.

울창한 숲길은 커다란 바위 앞에 놓인 계단을 올라선 후에야 조망이 트인다. 멀리 연봉을 이룬 낙영산~도명산의 무수한 지릉이 겹겹이 펼쳐진다. 하나같이 하얀 암반과 암릉을 이룬 수려한 산세다. 그 아래로 화양계곡 물줄기가 흘러간다. 도명산 정상까지는 거대한 산줄기만 해도 대여섯 개는 넘어서야 할 거리다.

“저기 끝, 하늘금 높이 치솟은 봉우리가 도명산입니다.”

“어휴, 가야할 길이 까마득하네요.”

주릉에 올라서니 널찍한 공터를 이룬 헬기장이다. 조망이 활짝 열린다. 동쪽으로 대야산(931m)과 조항산(953.6m), 청화산(987.7m)이 솟구쳐 병풍을 이루고 있다. 헬기장 끄트머리의 나무 그늘에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아침을 거른 채 새벽부터 달려온 까닭에 다들 허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로 둘러앉아 각자 챙겨온 음식을 나눠 먹는다.

헬기장에서 능선을 잇자 금세 가령산 정상이다. 주변의 돌을 주워서 원형으로 쌓아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정상석을 세워 놨다. 산정이라기보다는 능선 상의 완만한 봉우리 같은 곳이다. 이정표(낙영산 4.2km, 자연학습원 1.8km)와 정상석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만한 곳이다.

이곳부터 산길은 낙영산을 향해 남서쪽으로 4.2km를 내리 내달린다.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변함없이 이어진다. 도중에 고선우씨가 “발목이 아프다”며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이은정씨가 등산화의 끈을 조정해주며 보살핀다. 산행 내내 친동생처럼 보살펴주는 모습이 자매보다도 더 친근하다. 쉬엄쉬엄 고선우씨의 발걸음에 맞춰 산행을 이어간다.

어느덧 무영봉(742m)에 닿는다. 공터에 두 개의 돌탑이 서 있고 한 그루 나무에 ‘괴산의 명산 무영봉’이란 팻말이 소박하게 달려있다. ‘무명봉’으로 잘못 읽을 만한 봉우리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게 4개 산 중 높이가 제일 높은 700m대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낙영산 암릉길

무영봉에서 주릉은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가파른 나무계단이 안부를 향해 설치돼 있다. 고도를 한참 낮춘 후 다시 올라서야 하는 구간이다. 안부 너머로 화강암이 산정을 수놓은 낙영산이 불끈 솟아있다. 안부에 내려서니 8m쯤 되는 거대한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박명숙씨와 이은정씨가 크랙을 붙들고 오름짓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낙영산을 향해 암릉을 올라선다. 도중에 낙타 모양으로 목이 움푹 파인 암봉이 발길을 낚아챈다. 무영봉과 낙영산을 아우르며 주변을 조망하기에 좋은 암봉이다. 무영봉 너머로 대야산이, 그 너머로 뇌정산(992m)과 백화산(1063.5m)이 높디높게 솟아있다. 박명숙씨와 이은정씨가 바위에 올라타 주변을 조망하는 동안 고선우씨는 바위에 기대 휴식을 취한다.

낙영산 오름 코스는 이후에도 내리 바위투성이다. 슬랩을 이룬 마당바위를 거쳐 오르자 가령산과 마찬가지로 헬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낙영산까지는 산등을 타고 0.3km. 산길을 잇자 이번에는 능선 숲 한가운데 거대한 코뿔소와 낙타 등을 닮은 바위가 양립해 있다. 다들 낙타 등 바위에 올라타 기념촬영을 한다. 고선우씨도 기분이 고취됐는지 모처럼 활짝 웃는다.

 

조물주가 빚은 산정, 도명산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절경을 이룬 능선길을 오르내리다보니 낙영산(落影山, 684m)에 이른다. 허리춤에 닿을 듯한 크기의 정상석이 돌무더기에 꽂혀있다. 낙영산 정상은 숲이 우거져 비록 조망이 트이지 않지만 골계미로 이름을 드높인 산이다. 신라 진평왕 때 당 고조가 세수를 하는데, 세숫대야에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춰 신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이 산을 찾도록 했다고 한다. 하지만 찾지 못해 걱정하던 중 어느 날 한 도승이 나타나 이 산의 위치를 알려주니 산 이름을 ‘산의 그림자가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도명산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며 하산을 서두른다. 벌써 3시 40분이다. 도명산까지는 1.8km 거리.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초입부터 고생한 고선우씨가 언제 탈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능선을 내려서는 도중, 절벽 끝에 하늘을 향해 여러 가지를 뻗어 올린 수려한 금강송이 눈길을 잡아챈다. 바쁜 와중에도 멋들어진 소나무에 다들 소나무와 한 몸이 되어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선다.

500m를 내려서니 암부사거리다. 도명산과 공림사를 잇는 옛길이다. 허물어진 산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들이 흩어져 있다. 괴산 미륵산성(사적 제401호)이다. 이 산성은 낙영산과 도명산 정상을 남북으로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전체 둘레는 5.1km에 이르는 대규모 산성이다. 고려시대 방어용 산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성이다. 성 안에는 여러 개의 건물터가 있고, 화양계곡과 사담계곡, 도명골 계곡 쪽으로 문을 내었다. 전설에 의하면 홀어머니를 서로 모시려던 남매가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고 누이는 성을 쌓아, 먼저 끝내는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는 내기를 하였다 하여 ‘남매성’이라고도 불린다.

암부사거리에서 도명산을 향해 북쪽으로 계곡을 내려선다. 물이 흐르지 않는 너른 숲길이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완만한 계곡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길은 낙영산 주계곡을 지나 낙영산과 도명산 안부로 이어진다. 끝 모를 드높은 바위 슬랩이 도명산을 향해 암릉을 형성하고 있다. 그대로 올라서면 정상에 이내 닿을 듯하다. 하지만 비법정탐방로라 입맛만 다시다 길을 우측으로 한 바퀴 우회한다. 도명산 정상을 200m 앞에 두고 고선우씨가 더 이상 가지 못하겠다고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한다.

나머지 일행만 올라 도명산 정상에 선다.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조물주가 만들었을 커다란 기암괴석이 정상에 놓여있다. 선계(仙界)가 아닐 수 없다. ‘도사가 도를 깨달았다’는 데서 유래한 도명산(道明山)이란 이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속세를 벗어나 선계에 이르다

클라이머답게 박명숙, 이은정씨가 기암괴석 정상에 올라선다. 360도 거침없는 풍광이 펼쳐진다. 지나온 산들을 비롯해서 속리산까지 한눈에 보인다. 일명 두류봉이라는 불리는 묘봉(妙峰, 874m), 언제 봐도 신령스런 문장대, 학이 모여 산다는 상학봉(上鶴峰, 862m)이 맨 끝에서 산너울을 이루고, 그 앞쪽엔 덕가산(693m), 금단산(768.3km) 산줄기가 겹겹이 펼쳐진다. 맨 앞에는 지나온 낙영산 능선이 마치 산세가 새의 부리를 닮았다는 조봉산(鳥鳳山, 687m)으로 이어진다. 정상에 마냥 머물고 싶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선다.

정상을 내려서자 네댓 개의 집채만 한 바위들이 석림(石林)을 이룬 괴산 도명산 마애삼존불상(충북 유형문화재 제140호)이 나온다. 취재진 모두 삼존불의 거대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ㄱ’ 자로 꺾어진 암벽에 3개의 거대한 불상이 선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불의 경우 높이가  9.1m이고, 얼굴의 길이만도 2m에 이른다. 깨어진 부분을 감안하면 무려 15m에 이르는 대불이다.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은정씨가 2개의 불상을 찾은 후 “총 3개의 불상이 이곳에 있다”면서 석림을 휘젓고 다닌 끝에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외친다.

“세 번째 불상이 여기 있네요. 여기 동떨어진 암벽에 조각되어 있어요.”

삼존불의 배웅을 받으며 거대한 석문을 빠져나온다. 급경사지 위험지역을 벗어나자 완만한 숲이 이어진다. 여전히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숲을 빠져나오니 화양계곡이다. 화양구곡 중 제8곡인 학소대(鶴巢臺)가 반겨준다. ‘청학(靑鶴)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바위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자연학습원까지는 2km. 화양계곡 산책로를 따른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유난히도 시끄러운 초록빛 가득한 숲길이다. 고선우씨도 체력을 회복했는지 씩씩하다. 또 한 번 화양구곡이 반겨준다. 제9곡인 파천이다. 하얀 너른 암반이 티 없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 위에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닐을 꿰어 놓은 것’ 같다 하여 파천이라 부른다. 신선들이 이곳에서 술잔을 나누었다고 한다. 비록 신선은 아닐지언정 선계를 다녀온 흥에 겨워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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