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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리지 _ 수리산 경클리지

 

수리산에 10피치 바윗길이 있다!

경기클라이밍센터, 수리산 매바위 일원에 ‘경클리지’ 개척

· 강윤성 편집장  사진 · 정종원 기자

 

봄이 오면 수도권의 대표적인 등반지인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은 클라이머들로 붐빈다. 또한 서울 근교의 수리산 매바위, 남한산성 범굴암, 모락산 미래암장 등은 하드프리 클라이머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땅한 리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서울의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둔산, 삼악산, 설악산, 속리산 등 먼 곳이다.

 

하드프리와 리지등반의 절묘한 만남, 경클리지

과연 수도권에서 어프로치가 짧으면서도 하드프리와 리지등반을 병행할 수 있는 1석 3조의 바윗길이 있을까? 이러한 해답을 가져다줄 바윗길을 최근 군포시 수리산도립공원에서 발굴했다. ‘경클리지’다. 이미 개척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존재 자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엄격한 의미에서 경클리지는 하나의 암릉이 아니다. 매바위 암장 하단 암릉에서 슬기봉으로 이어진 지릉 좌우에 흩어진 7개의 암릉과 바위를 절묘하게 연결해 놓은 10피치의 바윗길에 가깝다.

리지 등반이란 암릉을 따라 짧은 암벽을 오르내리는 등반 방식을 말한다. 대체로 암벽등반 코스보다 쉽지만 오히려 위험요소는 더 크다. 이에 반해 경클리지는 하드프리와 리지등반 경계에 놓인 코스답게 더 어렵고 덜 위험하게 탄생했다. 그만큼 개척자의 상당한 고뇌와 수고가 배여 있는 바윗길이다.

4월 13일 오전 8시 30분에 군포시 산본동 수리산 초입에 자리한 군포시립중앙도서관 앞에서 경클리지를 개척한 경기클라이밍센터 회원들을 만난다. 센터장이자 개척자인 김병구씨가 경클리지의 발굴과 개척에 대한 생생한 탄생 과정을 들려준다.

“2015년 1월부터 4월까지 9주에 걸쳐 개척했어요. 13년 전부터 계획했던 곳인데, 수리산이 갑자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개척에 애를 먹었어요. 산불경방기간이라 감시를 피해 이은정씨와 한겨울에 주말마다 밤 9시부터 12시까지 랜턴을 켜고 얼어붙은 손으로 볼트질을 했어요. 10피치 모두를 하드프리 개념으로 개척했죠. 산불경방기간이 끝난 5월 15일 오픈을 하고, 다음날 회원 10여 명과 함께 첫 등반을 마쳤습니다.”

 

하늘길 암릉… 한 마리 수리가 되다

수리산 삼림욕장을 관통하여 성불사에 다다른다. 수리산은 도심 근교인 까닭에 등산로가 여기저기 난립해있다. 성불사에서 300미터 거리의 매바위 암장을 찾지 못해 산을 한 바퀴 헤맸다는 일화도 있다. 숲속의 교실 쉼터를 지나 곧장 올라 매바위 암장 하단에 도착한다. 아직은 벌거벗은, 커다란 나무가 묵직한 암릉을 둘러싸며 높게 치솟아 있다. 상단의 매바위 암장 역시 경기클라이밍센터에서 많은 코스를 개척해 놓은 곳이다. 회원들에게 이곳은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경클리지 1피치 출발지점 자리가 협소해서 확보자리로 낙석이 떨어지니 조심하세요.”

김병구씨가 수제자인 이은정씨에게 리딩을 맡기고 회원들에게 안전을 당부한 후 정종원 기자의 사진 촬영을 돕기 위해 암릉을 우회한다.

1피치(5.10a)는 등반길이 30m의 암릉코스다. 이은정씨가 10개의 퀵드로를 챙겨들고 강은호씨의 확보를 받으며 등반에 나선다. 그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나무의 키를 훌쩍 넘어 암릉 저편으로 사라진다. 환갑이 넘은 황적인씨 또한 선등을 하며 경쾌한 오름짓으로 성큼성큼 하늘길을 오르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1피치 벽을 올라서니 숲이 발아래 펼쳐지는 칼날리지다.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암릉이 아찔한 스릴감을 더해준다.

2피치 시작지점에 도착하니 황적인씨와 강은호씨가 그리그리 사용법과 확보 시스템을 두고 옥신각신이다. 이석만씨는 “시끄러워서 등반 못하겠다”고 농을 던진다. 두 팀이 엇갈려 등반하고 처음 한 팀을 이루다 보니 빚어진 상황이다.

2피치(5.8)의 17m 암릉을 통과하자 바위 군락지대가 나온다. 분홍색 진달래가 꽃대궐을 이룬다. 3피치(5.9·17m)를 오르던 이은정씨가 봄이 무르익은 바위 사이를 빠져나가 암릉을 넘어선다. 잠시 후 ‘등반 완료’란 신호가 산 위에서 들려온다.

3피치 암릉 끝에 서자 하늘이 활짝 트이면서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지나온 진달래 꽃폭탄을 맞은 암릉이 한 폭의 그림이다. 3피치 정상은 바위군락이 고인돌 모양으로 겹쳐져 석문을 이루고 있다. 마침 등반을 끝낸 황적인씨가 “석문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라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준다.

 

연분홍 진달래꽃 바다 횡단하는 티롤리안 브릿지

3피치 암릉을 내려와 우측으로 숲을 40m쯤 우회한다. 진달래 군락지 한가운데 바위 하나가  땅에 처박고 하늘을 받들며 불끈 솟아있다. 마치 엄지바위 같기도 하고, 고개를 치켜든 채 울부짖는 늑대의 머리 모습을 닮기도 했다.

“여기서는 티롤리안 브릿지로 계곡 건너편으로 횡단할 겁니다. 배낭이 돌아가지 않게 벨트를 꼭 하세요.”

가이드만 하던 김병구씨가 이은정씨의 확보를 받으며 모처럼 4피치(10a·10m) 등반에 나선다. 직벽을 가볍게 올라선 후에는 바로 자일을 해체시킨다. 이어 이은정씨가 선등하는 동안 김병구씨는 하강을 끝낸 후 건너편으로 이동, 두 암봉 사이에 티롤리안 브릿지를 설치한 후 건너오라고 외친다.

로프를 타고 계곡 위를 횡단하던 강은호씨가 중간 지점에서 힘이 빠져 오도 가도 못한다. 양쪽 바위봉에서 회원들이 훈수를 두지만 무용지물이다. 스스로 젖 먹던 힘까지 내는 수밖에 없다. 암봉과 계곡 주변에는 핏빛 진달래가 화사하게 펴 바다를 이룬다. 다들 봄바다를 건넌다. 시원한 바람이 실어온 꽃향기조차 코끝을 스친다. 이곳저곳에서 꽃잔치가 벌어진다.

티롤리안 브릿지를 끝낸 후 4피치 위쪽으로 되돌아 나와 5피치(5.10c·30m) 벽 앞에 선다. 거대한 벽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다. 이은정씨가 선등으로 정면 벽의 페이스를 직상하더니 피치 맨 끄트머리의 붉은 직벽조차 직등으로 넘어선다. 5피치를 올라서자 창공 아래 수려한 소나무 한 그루가 암릉 위에 서 있다. 경클리지 최고의 전망대이자 쉼터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놓는다. 계란, 커피, 쑥떡, 바나나, 크래커, 크림빵, 오렌지 등등. 김밥만 빼고 다 모였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다들 아쉬움을 토로한다.

“경클리지는 밖에서 보면 암봉이 하나도 안 보여요. 숲이 우거지면 숨바꼭질을 해야 할 겁니다. 5·6·7·8피치가 하이라이트인데, 이제부터 못 올라가는 사람도 나올 겁니다.”

 

경클리지 최고 난이도 5.11b의 하드프리 코스

경클리지를 개척한 김병구씨의 말은 단순 엄포가 아니었다. 경클리지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6피치(5.11b·25m) 오버행 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돌도끼가 금세라도 내려찍을 듯 모두를 압도한다.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곳이 여기예요. 얘가 자꾸 나를 거부해요. 쉬운 것 같은데 밀어내죠.”

경기클라이밍센터 최고의 클라이머인 이은정씨가 암벽화를 매만지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바위에 붙는다. 오버행 바위 턱의 첫 볼트에 카라비너를 건 후 오른발을 바위 깊숙이 후킹으로 밸런스를 유지한 채 오버행 바위 턱을 오른다. 다들 숨을 죽인다. 바위와 한 몸이 되고자 하는 꽉 찬 집념과 오르고자 하는 열정만이 산란해진 잡념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바위를 움켜쥔 클라이머의 몸짓에 드높은 하늘도 수직의 바위도 한 덩어리가 된다. 숲을 훑고 바위를 덮치는 요란한 바람조차 클라이머를 보듬는다. 이은정씨가 한 번 미끄러진 왼쪽 발을 다시 딛고 일어나 상단의 홀드를 낚아챈다. 멈췄던 긴 호흡이 “휴우~~” 하고 뿜어져 나온다. 이후 두 손을 날갯짓 삼아 창공을 향해 곧장 치솟아 오른다. 오버행 바위의 거친 각(角)도 그녀의 날갯짓에 전혀 장해물이 되지 않는다. 정상에 도착하자 환호성을 지른다. 온 세상이 눈부심으로 빛난다.

“써틴 클라이머 은정씨가 저 정도면 후등으로도 안 가는 게 낫겠어요.”

6피치를 올라서니 나이프리지다. 위태로운 암릉을 조심스레 돌아 아찔한 굴곡을 넘어 내려선다. 7피치(5.10b·15m)는 책을 90도로 펼쳐놓은 듯한 디에드르와 침니를 이룬 수직벽이다. 이은정씨가 왼쪽의 디에드르로 올라선 후 각진 모서리인 칸테를 중심으로 홀드를 뜯으며 손쉽게 올라간다. 7피치 정상을 넘어서자 수리산 슬기봉 등산로 이정표(임도5거리 770m, 슬기봉 130m)가 나온다. 등산로를 따라 30m쯤 내려서니 좌측 사면에 마지막 암릉이 똬리를 틀고 있다. 수리산의 울창한 숲은 암릉도, 바위봉도, 맑은 바람조차 숨겨놓고, 종종 시치미를 떼곤 한다. 한여름이면 모기조차 바글거린다고 한다.

8피치는 경클리지에서 2번째 난이도(5.10c)를 자랑하는 웅장하고 멋들어진 벽이다. 두 쪽으로 갈라진 침니에는 촉스톤이 쇄기처럼 박혀있다. 이은정씨가 왼쪽의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버트레스에 붙는다. 쉬운 듯하면서도 홀드가 애매한 곳이다. 선등을 마친 이은정씨가 “8피치 등반이 너무 재밌다”며 재차 등반을 한다. 그녀에게 등반은 달디 단 약수처럼 갈증을 풀어주는 행위다. 수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하다. 뒤따라 오른 이석만씨는 들떠 있던 덧바위가 떨어져 추락했다며 하소연을 한다.

8피치 정상에서 하산을 위해 고정된 자일을 잡고 9피치 암릉 바닥으로 내려선다. 두 피치는 연속된 암릉이지만 등반은 밑바닥에서 시작한다. 9피치(5.9·25m)는 암릉 중간에 잡목과 낙엽이 쌓여있어 다소 지저분하다. 하지만 정면 벽과 달리 정점은 피너클을 이루고 있다. 처음으로 로프를 걸고 하강한다.

마지막 10피치(5.10a·30m) 역시 9피치와 비슷한 유형의 암릉이다. 이은정, 강은호씨와 함께 10피치 암릉을 오른다. 수리산 슬기봉 정상 바로 전이라 시야가 확 트인다. 군포시와 안양시 아파트숲 너머로 모락산과 청계산, 그리고 광교산이 저 멀리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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