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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사찰 산행 _ 북악산 길상사

 

도성 밖 욕망의 늪에서 연꽃처럼 피어난 사찰

글 사진 · 양승주 객원기자

 

길상사(吉祥寺)는 북악산(北岳山, 342m,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자락 성북동에 있다. 성북(城北), 말 그대로 성의 북쪽에 있는 동네다. 길상사에 먼저 들렀다가 북악산을 오르기로 했다. 친한 후배이자 친구 김규영, 양수진 두 사람과 동행했다.

주말 오전 11시 한성대입구역에서 규영과 수진을 만나 길상사까지 걸어 올라갔다. 마을버스 2번을 타고 올라가도 되지만 성북동 마을길을 걷고 싶었다. 가는 길에 국수 거리를 지났다. 고심 끝에 국수집 하나를 골랐다. 다행히 손맛 좋은 국수를 한 그릇씩 먹을 수 있었다.

성북동 마을길은 예스럽다. 건물과 골목이 아기자기하다. 그러던 동네는 길상사에 도착할 즈음부터 바뀐다. 담장이 높아지고 건물이 으리으리해진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를 썼다. 시에서 노래하는 자연과 문명은 그때나 지금이나 성북동의 윗동네 아랫동네처럼 다르다.

길상사 입구에 사람이 많았다. 봄이고 주말이기 때문인 듯싶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큰 나무들이 보였다. 나무에 연등도 드문드문 달려 있다. 관광 온 외국인도 몇몇 보였다. 사찰 안을 걷다가 예쁜 꽃을 발견했다.

“저 개나리처럼 노란 꽃이 뭐지?”

“꽃 검색해 볼까! 음, 99퍼센트 영춘화네.”

 

법정 스님이 법회 열고 생을 마친 도량

영춘화 핀 마당을 지나 길상사 뒤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계곡 건너편 왼쪽으로 스님들의 거처가 보였다. 길의 끝에는 법정 스님 진영각이 있었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진영각은 작은 한옥이다. 마루로 올라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른쪽으로 법정 스님이 쓴 책들이 든 책장이 있다. 어림잡아 삼사십 권은 되는 것 같다. 정면으로 보이는 통유리 너머로 법정 스님의 초상화가 있고 그 옆으로 선반 위에는 스님의 물건이 담겨 있다. 붓, 벼루, 원고지, 모자, 제자들에게 남긴 유서 등이다.

왼쪽으로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함께 있는 작은 그림이 있다. <추상>이라는 제목의 그림인데, 한자로는 ‘쫓을 추’, ‘생각 상’이었다. 판화처럼 선으로만 담백하게 그린 그림이다. 스님의 초상화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스님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여전히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방에서 나왔다.

“저 의자가 법정 스님이 앉아 있던 의자예요.”

규영이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등받이가 있는 낡은 의자가 있었다.

 

시인과 기생과 스님의 인연

길상사의 건물은 제3공화국 시절 요정으로 운영되었던 곳이다. 대윈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다. 198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설법 온 법정 스님을 만난 김영한은 당시 시가 약 1억 원의 대원각을 시주하겠다고 말한다. 김씨가 법정 스님이 쓴 책 <무소유>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법정 스님은 거듭 시주를 사양했지만 1995년 끝내는 김씨의 시주를 받는다. 법정 스님은 시주받은 건물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 대법사로 등록한다. 그리고 1997년 사찰 이름을 대법사에서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바꾸고 법정 스님은 창건 법회를 열었다. 그 법회에서 김영한은 법정 스님으로부터 법명 길상화(吉祥華)를 받는다.

김영한은 기생이었다. 그는 함흥에서 만난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김영한을 ‘자야(子夜)’라고 불렀다. 어느 날 백석은 자야에게 만주국으로 같이 떠나자고 말한다. 그러나 자야는 거절한다. 얼마 뒤 그들은 경성에서 재회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석은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쓰고 떠난다. 김영한은 훗날 시간이 흘러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을 낸다. 김영한은 또 창작과비평사에 기부금을 주고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숙정문 올라서면 서울 시내 한눈에 보여

길상사 정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오르막길을 좀 더 올라가자 삼거리가 나왔다. 표지판이 삼청터널과 북악산길 양쪽을 가리켰다. 여기서 왼쪽 삼청터널 쪽으로 걸어갔다. 이 길로 가야 숙정문으로 곧장 올라갈 수 있다. 각국의 대사관저가 도열한 도로를 따라 15분쯤 걸어가서 삼청각 입구에 도착했다. 삼청각 입구 왼쪽으로 숙정문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야자매트길과 데크길을 10분쯤 더 걸어 올라가 숙정문안내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신분증을 검사받고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다. 고유 번호가 적힌 목걸이를 받았다. 다시 숙정문을 향해 걸었다. 안내소에서 5분쯤 걸어가니 숙정문이었다.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대문, 숭례문은 남대문이다. 숭례문이 예를 숭상한다는 뜻이고, 숙정문은 이와 대비를 이뤄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을 가진다.

숙정문 이후는 성곽을 따라서 가파른 길을 올랐다. 시야가 점점 트이기 시작했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성곽 너머로 경복궁과 광화문이 보였다. 그 뒤로 남산, 그 너머로 관악산과 청계산이 서울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성곽길이 가팔라지더니 곧 전망대에 도착했다. 북한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한 번 더 오르막길을 오르니 너른 터가 나타났다. 청운대(靑雲臺, 293m)다. 어떤 노인이 동행자들과 서울을 내려다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규영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에 따라가서 그들의 말을 엿들었다.

 

옳은 것을 드러나게 하다

노인은 동고서저 지형인 한반도에서 청계천이 동쪽으로 흐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청계천이 지나가는 서울의 지형은 서쪽이 더 높다는 말이다. 또 광화문 광장이 지금은 평평하지만 과거엔 그곳이 평평하지 않았고 언덕이었다고도 말했다. 지금의 광화문 광장에 정말 언덕이 있었는지는 당장 확인할 길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청계천 이야기는 맞는 것 같다. 귀동냥을 마치고 우리의 갈 길을 갔다.

성곽은 북악산 정상으로 이어졌다. 정상은 적당히 넓은 터를 이루고 있다. 조망은 나무로 시야가 가려져 확 트이진 않는다. 정상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가파르게 쏟아지는 길을 따라서 창의문이 있는 부암동으로 내려갔다. 창의문에 도착할 때쯤 큰 사슴 한 마리를 보았다. 창의문안내소에 도착해 목걸이를 반납했다. 사슴에 대해 안내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북악산에 사슴 무리가 사는데 밤에 주로 나타난다고 답했다.

창의문을 둘러본다. 창의문은 옳은 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이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4소문이 있다. 창의문은 북대문과 서대문 사이의 북소문이다. 창의문을 보고 나서 그 맞은편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시집 <별 하나에 시> 한 권을 사서 들고 마을버스를 타고 서촌으로 내려갔다. 통인시장을 지나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소주 한잔을 걸쳤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엄숙하게 다스린다 숙정문, 옳은 것을 드러나게 한다 창의문, 이 세 곳을 이어 걸으며 서울이라는 욕망의 늪에서 사랑과 깨달음으로 피어난 연꽃 같은 절이 길상사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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