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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


추억은 변해도 산천은 의구하지!

글 · 이승태 편집위원  사진 · 정종원 기자  협찬 · MSR

 

봄소식 타고 가는 경춘선

경춘선은 70~80년대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 특별한 추억 한 자락쯤은 얽혀 있는 곳이다. 청량리역을 출발한 열차는 누군가의 통기타 반주에 맞춰 ‘떼창’을 부르는 사이 이름만 들어도 애틋해지는 대성리와 청평, 가평, 강촌역을 지나 춘천으로 달려갔다. ‘춘천 가는 기차’는 그렇게 우리의 젊음과 낭만의 시절을 함께했다.

속절없이 흐른 세월 따라 모두 중년이 되는 사이 경춘선도 많이 바뀌었다. 2010년에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며 덜컹거리던 무궁화호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고, 북한강변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던 노선도 직선화되며 옛 강촌역은 폐역이 되었다. 김현철이 노래한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던’ 춘천 가는 기차는 이제 최고시속 180km의 ITX-청춘 열차로 바뀌어 한 시간 만에 서울-춘천을 돌파한다.

의구한 것이 산천이라 했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낭만적인 철길인 경춘선을 따라 수도권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산들은 여전히 푸르고 아름답다.

이 봄, 배낭 하나 둘러메고 이제는 아련해진 옛 추억을 떠올리며 경춘선에 몸을 실어보는 건 어떨까?

 

만물이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드는 4월, 이 빛나는 꿈의 계절에 경춘선 열차는 즐거운 선택이다. 젊은 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경춘선을 타고 떠나는 산행이라니, 봄날의 선물 같다. 서울보다 봄이 먼저 찾아올 것 같은 춘천과 강촌, 그 사이에 솟은 삼악산으로 오랜 산 친구 김영선씨와 함께 봄 산행을 떠났다.

 

첫 걸음부터 비탈길이라니!

삼악산(三岳山), 이름만으로도 이번 산행을 긴장하게 만든다. 얼마나 험했으면 ‘三岳(삼악)’이라 불렸을까. 내겐 오래 전 등선폭포 쪽으로 올라 정상에 다녀왔다는 기억이 있을 뿐, 도무지 어떤 산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곳이다. 체력 좋은 정종원 기자가 삼악을 이루는 세 봉우리를 모두 가보자며 코스를 제안한다. 날머리로 잡은 정양사 입구에 차량 한 대를 갖다 놓고 반대쪽 강천교로 돌아와서 산행을 시작한다.

육교를 건너니 낙석방지책 펜스가 끝나는 곳에 안내도와 함께 표지기가 가득 달린 들머리가 보인다. 한 걸음 들어서자마자 비탈이다. 어른이 겨우 들 만한 크기의 거친 돌이 가득한 산사면을 따라 참나무 종류가 많이 보인다. 바닥은 묵은 낙엽이 수북이 깔렸다. 다리는 천 근 만 근이고,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는데 김영선씨와 정 기자는 성큼성큼 잘도 오른다.  

삼악산은 어느 코스라도 처음부터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 한다. 능선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온통 바위다. 그것도 날이 선 칼바위가 대부분이어서 길이 사납고, 오르내림도 심하다. 얼마나 올랐을까, 비탈 중간쯤에 벤치 세 개가 놓인 쉼터가 보인다. 동지섣달에 만난 꽃 같이 반갑다.

잠시 쉬고 나니 호흡이 적응되었는지 걷기가 한결 편하다. 오른쪽으로 조망이 트이는 칼바위가 나타나 올라보니 의암호를 지난 북한강과 일대가 보인다. 그러나 대기가 탁해 뿌옇다. 삼악좌봉이 가까워질수록 산길엔 바위가 더 자주 나타나고, 좁은 능선을 따라 활엽수에 내몰린 소나무도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는 하나같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이 험한 산에서 잘도 자라준 소나무가 고맙기까지 하다.

 

칼날능선이 즐비한 삼악산

출발한 지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닿은 삼악좌봉은 조망이 좋다. 의암호를 지나온 북한강과 강촌유원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강원도의 산들이 펼쳐낸 멋진 파노라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제 첫 봉우리를 찍었으니 남은 길은 좀 수월하겠지, 생각하며 길을 나섰는데, 웬 걸!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줄을 잡고 오르거나 바위에 계단용으로 박은 철 구조물을 밟고 올라야 하는 곳이 나타나더니 바위는 하나같이 날이 섰다.  

삼악산은 바위가 많다. 산행하는 내내 거의 동일한 성질의 바위가 나타난다. 흔한 화강암은 아닌데, 지질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서 궁금해 하다가 하산 후 찾아보니 변성암 중 하나인 규암 같다.

등선봉 직전의 칼날바위가 압권이다. 성난 짐승이 이빨을 드러낸 듯 하얗고 날카로운 바위 틈새를 따라 줄이 매진 좁은 길이 이어지더니 꼭대기에서 펼쳐지는 전망은 일망무제다. 삼악좌봉보다 조금 더 높아 풍광도 한 뼘쯤 더 넓어진 듯, 멀리까지 시원하다.

검은 비석이 서 있는 등선봉엔 석축 흔적이 보인다. 드물게 기와조각도 발견되는 걸 보니 옛날 이곳에 삼악산성의 중요한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앉아 쉴만한 공간이 있어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지도를 켜 보니 아직 삼분의 일도 못 왔다.

 

용화봉까지 이어지는 삼악산성

등선봉에서 다음 봉우리인 617봉은 빤히 내다보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길이 수월한 편이고, 거리도 가깝다. 군데군데 조망이 트이며 가야 할 청운봉과 용화봉은 물론, 이어진 능선도 가늠된다. 삼악산성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쯤부터다. 주변의 돌을 모아 쌓은 1미터 남짓의 성벽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성벽의 북쪽이 거의 깎아지른 절벽이라서 크게 쌓지 않아도 천연 요새 같다. 돌이 많은 산이라 뿌리가 땅 위로 기어 다니는 나무가 많이 보인다.

소나무 몇 그루가 멋지게 어우러진 617봉에서 길은 북쪽으로 꺾이며 떨어지듯 이어진다. 내려선 안부엔 제법 많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중간에서 만난 갈림길 이정표엔 오른쪽으로 700m 내려서면 흥국사가 나온단다. 등선폭포 위쪽에 있는 절집이다.

안부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우리는 한 달음에 청운봉에 닿는다. 정상 표석이 없는지, 보지 못한 것인지 청운봉은 스치듯 지난 느낌이다. 조망도 막혀 바로 내려선다.

청운봉에서 용화봉 사이 능선에서는 성벽이 꽤나 운치 있게 이어진다. 까마득한 삼한시대에 쌓은 것이라는데, 그토록 긴긴 세월을 퇴락하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변변찮았을 장비로 이 험한 산에 어떻게 이런 벽을 쌓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성벽 위로 길이 이어진다.

얼마쯤 갔을까? 칼로 자른 듯 성벽이 뚝 끊어진다. 그 오른쪽에 안내판이 보인다. 삼악산성에 대한 설명이 적혔다. 삼한시대의 맥국의 성이라고 알려졌는데, 왕건에게 패한 궁예와 그 군졸들이 피신처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성벽이 끊어진 것은 이곳이 ‘박달재’라는 고개여서다. 성을 쌓은 후 나중에 고개가 열린 모양이다. 고개 한쪽에 커다란 박달나무가 보이는데, 이 나무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면 박달재는 조선후기쯤 생긴 이름이겠다.

 

데크 깔린 동봉이 조망명

박달재를 지나며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길 주변은 언제부턴가 진달래 천지. 완연한 봄이면 꽃길로 바뀔 텐데, 지금은 가끔씩 나타나는 소나무만 푸르다. 박달재에서 용화봉을 오르면서 처음으로 등산인을 만난다. 서로 반가워서 밝게 인사를 건넨다.

“강촌에서 올랐으면 꽤 힘들었을 텐데, 고생이시네요. 삼악산에 오는 백 명 중 한두 명이 세 봉우리를 모두 오를 뿐, 대부분 이 용화산만 찍고 내려갑니다. 끝까지 안전산행 하세요~!”

삼악산을 자주 오르는 듯, 그는 봉우리 이름을 줄줄 꿰고 있다. 이토록 험한 산을 여러 번 왔을 법한 그의 산 내공이 궁금하다.  

곧 닿은 용화봉은 654m로, 삼악산의 최고봉이다. 서울에서 왔다는 여성 등산인 두 명과 인천에서 온 남성 등산인 세 명을 정상에서 만난다. 이토록 험한 산을 누가 오를까 싶었는데, 예상 밖이다. 상원사로 올랐으며 등선폭포로 내려설 것이란다. 뾰족한 바위가 다닥다닥 붙은 정상부엔 편히 앉을 만한 공간이 여의치 않아서 사진만 한두 장 찍고 내려선다.

용화봉 다음 봉우리, 그러니까 삼악산 동봉은 용화봉보다 더 뾰족한 바위로 이뤄졌으나 그 바위를 피해가며 나무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그래서 데크면이 하나로 이어지진 않지만 쉴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다. 바위에 걸쳐 만들었기에 사방으로 조망도 탁 트인다. 삼악산 최고의 전망대다. 전망 설명판이 있어서 짚어가며 살피는 재미도 좋다. 우선 북동쪽으로 의암호가 훤하다. 호수 속 섬인 붕어섬과 상중도, 하중도도 손바닥처럼 잘 보인다. 설명판엔 북쪽으로 화악산과 용화산에 양구의 사명산까지 표시되어 있는데, 봄날의 희뿌연 대기가 아쉽다. 날이 쾌청하다면 풍광이 어마무시할 텐데….

 

동천사 입구가 날머리

동봉에서 쇠줄 난간이 설치된 칼날능선을 지나 조금 내려서니 나무둥치가 온통 시커멓다. 지난해 4월에 발생한 산불의 흔적이다. 처음엔 둥치만 그을린 정도더니 조금 더 가자 고사한 나무가 적잖게 보인다. 우리가 좋아서 찾는 산을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마음이 아프다.

화마가 할퀴고 지난 구간을 내려서다가 ‘의암 매표소’와 ‘정상’ 방향을 표시한 동그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우리는 남쪽 능선으로 들어선다. 안 가본 길이기도 하거니와 차를 주차해 둔 정양사로 이어진 길이어서다. 이 능선도 산불피해를 입어서 소나무 껍질 대부분이 시커멓다. 가파르기는 마찬가지여서 반대로 올랐다면 꽤나 고생일 것 같다. 날머리가 가까워지자 조금씩 완만해지더니 정양사 위쪽에선 커다란 너덜겅도 나타난다. 막 꽃망울을 터뜨린 생강나무와 돌 틈 사이에서 꽃봉오리를 맺은 산괴불주머니도 반갑다. 다 내려서니 예상과 달리 정양사 오른쪽 능선 너머의 동천사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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