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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여성산악회 메라피크(Mera Peak) 원정

 

신이 허락해 잠시 다녀온 히말라야

글 · 김세옥(한국여성산악회)  사진 · 원정대

 

참으로 기막힌 대륙이다. 인도 북부와 중국 연안 평지 사이에 과도하게 융기된 직사각형 모양의 땅덩어리. 그 길쭉하고 네모진 융기 안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8,000m대 산이 14개나 있는 나라. 마을과 마을이 높은 산으로 이어져 평생 자신이 태어난 산기슭 오지를 떠나지 않고 사는 백성도 많은 땅. 하루 혹은 반나절은 걸어야 다음 마을에 닿을 수 있는 땅. 척박한 토지에 그림 같은 다랑이밭을 개간하고 소박한 농사를 지어 가난하지만 질긴 삶을 살아내는 땅. 인간의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이라는 절대자에 순응하며 최소한의 물질로 생존을 감당하는 땅. 그곳을 열망하는 이방인도 막상 몸이 닿으면 녹록지 않은 땅.

 

에베레스트의 꿈을 위하여

한국여성산악회는 2002년 엘브루즈를 시작으로 여러 집행부를 거치면서 7대륙 최고봉을 위한 원정을 진행해오고 있다. 킬리만자로, 아콩카구아, 코지어스코, 데날리를 차례로 등정하고 빈슨매시프와 에베레스트만 남아있다. 남겨둔 등정을 추진하면서 조직도 활성화시키고자 2017년 아마다블람 등반을 계획했었으나 무산되고 올해 6,476m 메라피크 원정을 진행했다. 다음에는 아마다블람, 그 다음에는 7,000m대의 등정. 이렇게 차근차근 해나가면 8,848m 아시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도 한국여성산악회가 해낼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이번 원정에서 얻은 성과였다.  

히말라야 원정은 산을 만난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늘 미뤄지는 버킷리스트가 된다. 이전보다 항공편이나 국내외 에이전시가 다양해져 원정이 수월해지긴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또한, 최소 2주 이상의 휴가가 담보되어야 하기에 늘 소망으로만 남겨진다. 나 역시 그랬다. 메라피크 원정이 계획된 후 히말라야에 대한 열망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어렵게 받아야 했던 긴 연차휴가와 일상의 무게로 인해 일찍 항공권을 예매하고도 몇 개월을 갈등하며 저울질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무릅쓰게 만드는 산과 등반, 그리고 히말라야.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랴. 더구나 자매들이 함께한다. 올해는 2009년 59세 최고령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송귀화 선배가 칠순이 되는 해여서 더 뜻깊은 원정이 되었다. 미리 얘기하자면 각국의 트레커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때마다 모두 놀라워하며 칠순을 함께 축하해주었다. 더불어 원정 기간 중 이승형 회장은 회갑을, 김경자 대원은 생일을 맞아 여러모로 의미 있는 원정이었다.

조금이라도 휴가를 아끼기 위해 일행보다 하루 늦게 출국했다. 일주일에 네 번 있는 카투만두행 직항은 가을 시즌이라 좌석이 만원이다. 주로 한국 등반객들이지만 일반 네팔 여행객도 적지 않았다. 자국에는 네팔 직항이 없어 경유하여 비행하는 일본 트레커들도 많았다. 쿰부 EBC와 안나푸르나를 가는 탑승객 중에는 아는 얼굴이 몇몇 있어 인사를 나눴다.

 

루클라로 향하는 길, 텐징-힐러리 공항

쿰부 지역 트레킹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카투만두에서 루클라로 가는 경비행기다. 채 20명이 안 되는 승객을 태우는 프로펠러 경비행기는 기상이 나쁘면 일주일씩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도 쿰부 등반 후 나흘 동안 루클라에 발이 묶였던 경험이 있다. 다행이도 이번엔 오고갈 때 모두 당일 탑승을 하는 행운을 누렸다.

루클라의 텐징-힐러리공항은 비좁고 복잡하다. 카고백(Cargo bag)을 쌓아 놓고 차례를 기다리는 각국의 트레커들의 모습은 흡사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한다. 방송안내도 전광판도 없다. 그저 기다리다 작은 비행기 하나라도 날아오면 자신의 비행기 표를 확인하며 뛰어간다. 탑승 차례를 기다리며 카투만두에서 타고 온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지켜봤다. 사람 대신 싣고 온 채소며 과일들이 내려진다. 터진 박스에서 토마토가 쏟아진다. 이 아날로그식 공항은 몹시 불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네팔스러워 정겹다.

공항 바로 앞에는 각국의 수많은 트레커들과 등반가들이 끊임없이 모여든다. 마당에 쌓여있는 카고백들은 ‘셰르파롯지’에서 연신 포터들에게 실려 나간다. 셰르파롯지는 루클라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셰르파 어르신이 운영한다. 지난번 딸아이와의 여행에서 날씨 때문에 루클라행 비행기를 타지 못해 고생을 했다. 그때 우릴 새벽마다 깨워 공항으로 데리고 나가 비행기를 탈수 있도록 챙겨 준 분이다. 당시 기억은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그 셰르파 어르신은 가을볕과 꽃들이 환한 그 마당에서 오고 가는 이방인들에게 여전히 친절하고 사소하게 마음을 쓰고 있었다. 어르신과 반갑게 포옹을 나눴다.

4년 전 처음으로 딸과 단둘이 한 달 동안 쿰부 지역 칼라파타르와 촐라패스, 안나푸르나까지 트레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간절하던 네팔이었지만 장기 휴가를 낼 수 없어 퇴직하면 가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러다 그해 대학원 논문을 쓰기 위해 6개월 휴직을 하게 되었다. 논문 계획서를 낸 후 앞뒤 가리지 않고 네팔로 증발해, 한 달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동기들은 내게 ''산에 미친'' 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었다. 지도교수님께는 아직도 네팔 다녀왔단 말은 못하고 있다. 딸과 함께했던 첫 히말라야의 기억은 생생하다. 한 번도 산에 다닌 적 없었던 우리 딸은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두 배로 걸려 오른 해발 5,550m 칼라파타르 등반은 평생의 가치로 남았을 것이다.

 

메라피크 고소적응을 위한 우회여정 선택

메라피크는 네팔 정부가 지정한 히말라야 쿰부 산군 33개의 피크 중 가장 높은 봉우리다. 1953년 초등된 이후 임자체, 로부체, 파첼모, 피상피크 등과 함께 인기 있는 5대 트레킹 피크다. 중앙봉, 남봉, 그리고 제일 높은 북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클라에서 북동쪽으로 40km 떨어진 마칼루-바룬 산군이지만 루클라에서 가까워 대부분 이곳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입산허가 신청 시 메라피크 퍼밋과 더불어 마칼루 퍼밋도 동시에 받아야 한다.

상업 에이전시에서 운영되는 메라피크 트레킹은 기간을 2주로 단축하기 위해 루클라에서 바로 해발 4,610m 자트라라를 넘어 오르는 코스로 진행된다. 해발 2,830m인 루클라를 출발해 하루이틀 사이에 고도를 4,000m대로 올리는 건 매우 위험하다. 실제 몇 년 전 한국인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우리 팀은 루클라 남동쪽 여러 동네를 우회하는 여정을 선택했다. 팀 전원이 5,000m 이상 높이의 고산등반 경험이 있음에도 해발 3,000m 지역을 3~4일 오르내리며 고소에 적응하는 안전하고 여유 있는 일정을 잡았다. 이 루트는 지리~마칼루로 이어져 쿰부지역을 길게 트레킹하는 코스다.

시즌을 맞아 붐비는 쿰부가 아닌 트레커들이 드문 빠이야(2,730m)-빵고마(2,850m)-닉사마(2,745m)-체트라콜라(3,150m)로 이어지는 길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원시 히말라야 최상의 트렉이었다. 시부제라고도 불리는 빵고마 롯지에 자고 일어나 아침 창문으로 내다본 덮인 칸첸카는 절경이었다. 닉사마를 지나 체트라콜라로 가는 길에 롯지가 아닌 계곡에서 점심을 끓여 먹기도 했다. 눈만 마주치면 웃는 친절한 쿡포터들이 해준 수제비 점심은 별식이었다. ‘계곡소풍’을 즐기느라 늦게 도착한 롯지는 먼저 온 독일팀이 차지한 후였다. 그 바람에 마구간 같은 롯지의 흙바닥에서 자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극한의 추위와 고소 그리고 정상공격

트레킹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고도가 4,000m로 오르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입맛을 잃는 대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체력 싸움인 원정에서 잘 먹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다. 체트라콜라(3,150m)는 본시 아름다운 강이었으나 최근 호수의 둑이 터져 범람한 이후 길이 유실되어 너덜길로 변했다. 체트라콜라와 코테(3,600m)를 지나 탕캉(4,350m)에 이르니 잘 걷지 못하는 대원들이 나왔다. 이후 두 팀으로 나눠 산행을 진행했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추위와 고소가 심해졌다. 하지만 수목한계선을 지나 난로를 피우려면 많은 돈을 지급해야 하기에 장비와 몸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보온의류를 충분히 가져오지 않아 핫팩 5개로 추위와 싸웠다. 동계 추위에 웬만큼 적응되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산에서의 자만은 위험을 부른다.

8일 차에 마지막 롯지인 카레(5,045m)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5,300m)부터는 이중화와 설산용 크램폰을 신고 피켈을 챙겨 안자일렌으로 빙하 위를 등반했다. 화이트아웃이 오락가락하는 설원을 지나 도착한 하이캠프(5,800m). 하늘의 달과 별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6,000m 고도의 텐트는 춥고 힘들었다. 귀화 선배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정도의 추위라 했다. 원정 내내 씩씩하던 나의 파트너 경자 대원은 하이캠프 도착 후 고소로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걱정됐지만 다행히 새벽에 깨우니 두말없이 일어난다. 새벽 2시, 숭늉 한 그릇 먹고 정상공격에 나선다.

대원 2명이 하이캠프로 올라오지 못해 5명만 정상으로 출발했다. 이른 새벽인데도 여러 팀이 헤드램프을 켜고 우주를 유영하듯 어둠 속을 걷는다. 안자일렌 상태라 누구라도 멈춰 서면 같이 서야 하는데 앞에서 누군가 자꾸 멈춘다. 결국, 고소를 이기지 못한 일행이 해발 6,200m 지점에서 하산을 결정하고 남은 3명이 가이드 삼덴과 정상으로 향했다. 날이 밝자 주변의 산군들이 눈에 들어왔다. 끝없는 설산이 펼쳐졌다. 마침내 정상 아래 가파른 수직 벽을 지나, 11월 2일 오전 9시 12분 메라피크 정상에 올랐다. 날이 맑고 시계가 좋아 마칼루와 에베레스트, 로체, 초오유 등 주변 산군이 한눈에 들어왔다. 히말라야 산군의 장엄한 광경이었다. 가져간 깃발을 펼쳐 사진을 찍고 서로 등정을 축하했다.

등정 후 하얀 설원으로 내려오는데 오를 때도 이렇게 길었나 싶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설원 끝에 사랑스러운 쿡 앙마가 고맙게도 뜨거운 차와 누들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졸려 먹는 둥 마는 둥 눈 위에 잠시 쓰러져 잤다. 카레에서 하루 쉬고 코테(3,600m)까지 한걸음에 내려왔다. 오르막으로 치닫는 툴리카루카(4,270m)를 거쳐 자트라라(4,610m)로 향하는 여정은 멀고 팍팍하여 힘들었다. 특히 자트라라의 내리막길은 몹시 가파르고 얼어 있어 오르내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고개에서 포터 없이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아르헨티나 알파인 클라이머들을 만났다.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서로 메라피크를 올랐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등반 목표 하나를 이룬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문명의 무력함을 절감했다.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할 땐 반나절 이상을 걸어야 하는 곳. 6,000m 봉우리 하나를 오를 때면 두통과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곳. 한눈에도 담아지지 않는 히말라야 산군은 인간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으며 만년설을 이고 늘어서 있을 뿐이다. 그 위용에 기가 죽는다. 이 엄청난 산군 아래 인간의 시도는 그저 미숙하고 나약한 몸짓에 불과하다. 14좌를 한들 이 산군을 다 안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단지 신이 허락해 잠시 다녀오는 것일 뿐.

 

 

원정 개요

원정 명칭 2018년 한국여성산악회 메라피크(Mera Peak, 6,476m) 원정대

원정 기간 2018년 10월 22일~11월 10일(총 20일)

원정 대원 7명 송귀화(원정대장) 이승형 김명림 양미정

 *등정: 김세옥 윤경희 김경자

운행 거리 총 116.04km

원정 루트 루클라(2,830m)-빠이야(2,730m)-빵고마(2,850m)-닉사마(시부제 2,745m)-체트라콜라(3,150m)-코테(3,600m)-탕캉(4,350m)-카레(5,045m)-베이스캠프(5,300m)-하이캠프(5,800m)-메라피크(6,476m)-카레(5,045m)-툴리카루카(4,270m)-자트라라(4,610m)-루클라(2,8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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