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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문의 벽 _ 인수봉 고독의 길

 

서로의 꿈을 아우르던

그때로 돌아가는 추억의 길

· 최석문(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기자

 

서울의 기온이 올 들어 가장 추운 영하 9도를 찍었다. 아침에 일어나 장롱에 있는 등산용 내복과 장갑 등 보온에 필요한 장비를 찾기 시작했다. 혹시 있을 눈과 얼음을 대비해 아이스 엑스 한 자루, 빙벽화도 챙겼다. 항상 취재에 동행했던 이명희씨는 이번에 참석하지 않는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후배와 오랜만에 오붓하게 등반하고 오라는 배려다.

후배 박정용은 현재 부산에서 부산클라이밍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등반을 접한 그는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지냈을 뿐만 아니라 로체(8,516m) 남벽으로 시작된 알파인 등반, 이후 쉽튼 스파이어(5,950m), 마칼루(8,463m) 등정, 콩데(6,187m) 북벽을 단독 등반했으며, 2016년 강가가푸르나(7,455m) 원정에 참여하여 김창호 대장, 필자와 함께 남벽 신루트를 개척한 바 있다. 이 등반으로 2017년 산악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황금피켈상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니 나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은 뛰어난 현역 등반가라 할 수 있다.

 

옛 악우와 함께한 겨울 인수

그와의 인연은 2008년 동계 천화대에서 시작되었다. 다이나믹 부산 마칼루, 로체 원정대 훈련차 함께 등반하게 된 것이다. 유난히 눈이 많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겨울 천화대였다. 당시 등반 욕심 많던 필자는 신이 나서 왕관봉까지 후배에게 단 한 구간도 등반과 러셀을 양보할 생각을 못했다. 그는 싫은 내색 한번 없이 그렇게 이틀을 함께 등반했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난 후에서야 그는 그때 일에 대해 농담처럼 얘기를 꺼냈고 그 말을 듣고 등반에 눈멀었던 내가 부끄러워졌었다.

훈련이 끝나고 2009년에 그가 단독으로 콩테 북벽을 등반한 기사를 보고 적지 않게 놀랐었다. 자연스레 그의 다음 등반이 내심 기대되었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산이 아니라 가정과 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를 종종 보았으나 산보다는 시내에서 만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문득 2016년 강가푸르나 원정에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다. 등반 기간 내내 언제나 웃음을 놓지 않을 만큼 유쾌한 에너지를 갖고 있던 그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그가 원정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단지 산에 끌려 등반을 가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의 절실한 마음이 아니었다. 다만 2008년 마칼루 등반에서 맺은 김창호 대장과의 우정이 강가푸르나 등반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출발일 당일에야 공항에서 겨우 아내의 승낙을 받았지만 그만큼 그에게는 지켜야만 되는 의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대충 그렇게 짐작은 했지만 한 번도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우이동에서 아침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그는 7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아침까지 먹고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밤차를 타고 오느라 잠을 못 자서인지 피곤해 보였지만 이내 특유의 쾌활함으로 돌아왔다. 10시쯤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했음에도 수월하게 주차를 할 수 있었던 건 등산객을 밀어낸 추운 날씨 덕분일 것이다. 간간히 로프와 헬멧이 보이는 배낭을 매고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빙벽화를 신은 사람들은 고독의 길을 가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추워서 암벽코스를 등반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출발 지점에 도착하니 벌써 3명이 등반 중이었고 또 다른 팀 네 명이 우리 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인수봉 이곳에는 등반 온기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슬링으로 만든 하네스와 딱딱한 빙벽화

1997년 첫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4주 후 고독의 길을 통해 오른 인수봉 풍경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부분 인수봉을 처음 오를 때 이 길을 선택한다. 쉬운 난이도, 짧은 피치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 때문에 등반 대장들이 이곳을 택하는 까닭이다. 오르는 이는 저마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히말라야와 알프스를 꿈꾸고, 어떤 이는 겨울 인수봉을 꿈꾸고, 암벽등반 시즌에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고산거벽을 꿈꾸며 고독의 길을 둔탁한 빙벽화에 크램폰을 차고 수도 없이 올랐고 그렇게 꿈을 키웠다. 고독의 길만 겨울에 선등 설 수 있는 실력이면 웬만한 알파인 벽은 다 오를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믿고 열심히 다녔다. 후에 막상 등반을 가보니 더 어려운 곳이 수두룩했다. 아마 선배는 기술보다는 용기와 노력을 일러준 것일 테다.

최고 난도 5.7정도로 지금은 혼자서도 갈 수 있는 고독의 길이지만 만만히 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암벽등반 시즌이라도 로프와 확보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도 20여 년 전쯤 혼합등반으로 오르다 10여 미터를 추락한 적이 있는데 만약 그때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벽에 붙은 앞선 등반팀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뒤에 네 명이 또 도착했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귀바위D(취나드A) 1피치를 출발해 심우길 1피치를 오른 후 다시 고독의 길로 넘어갈 계획을 세웠다. 인수봉은 주로 슬랩이 많아서 빙벽화를 신고 훈련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이 루트와 고독의 길, 설교벽, 인수릿지, 크로니 1피치로 인수B를 오르는 루트는 상대적으로 훈련하기에 훌륭한 대상지이다.

장비를 착용하려 배낭 속을 아무리 찾아봐도 하네스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이명희씨가 “하네스 챙겨”했던 말을 흘려듣고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 장비를 가져오지 않아 산에서 난처했던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유독 하네스를 잊은 경험이 많다. 덕분에 슬링으로 하네스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슬링 하네스를 착용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어느 때나 등반 열기 가득한 고독의 길

귀바위D 1피치는 확보물 설치가 용이하고 빙벽화를 신고 등반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발 홀드가 있다. 크램폰을 착용하지 않는 것도 좋은 훈련 방법이다. 얼음과 눈이 많은 곳에서는 크램폰이 필요하지만 없다면 굳이 착용할 필요는 없다. 빙벽화는 암벽화를 신었을 때처럼 바닥이 휘거나 발목이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의 슬립성 홀드도 딛고 설수 있는 감각과 요령이 생겨 상체 근력에 의지하는 비율을 줄일 수가 있다.

심우길 1피치는 출발 지점이 오프위드 크랙이라 배낭을 배고 등반하기에는 불편하며 크랙이 넓어 확보물 설치가 되지 않으니 추락에 주의해야 한다. 크랙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발을 넓게 벌리는 것이 좋다. 이후 크랙은 어렵지 않으나 빙벽화를 싣고 레이벡 동작을 하는 것보다는 재밍하며 등반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다.

해가 들어 춥지 않던 심우길과 달리 음지가 된 고독의 길은 냉기로 가득했지만 오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등반 열기로 가득했다. 출발할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해외 등반의 훈련으로 아이스 엑스에 크램폰을 착용하고 이 루트를 오르는 사람도 있었으며 주말 오후 가볍게 마실 오듯 찾아온 부부도 보였다. 다른 등반팀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양보를 하느라 인수봉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고 일명 영자크랙(인수콜)에서 3번의 하강으로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시사철 등반인들이 많이 찾는 고독의 길은 인수봉의 그 어떤 루트보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는 루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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