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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패킹 _ 동해안 자전거도로

땡볕에 동해안 자전거길 탐사기 3

 

호산에서 포항까지 약 190km,

마지막 무더위와 함께 달렸다

광복절이 낀 연휴, 아침 첫차를 타고 출발했지만 장대비가 오가는 궂은 날씨 탓인지 버스는 예정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한적한 강원도 끝 마을 호산터미널에 도착했다.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하늘의 조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스마트폰의 일기예보를 들여다보지만 구름에 우산 표시만 한 가득이다. 비가 나쁘지 만은 않다. 이 더위에 시원하게 쏟아지면 그 또한 지나가는 추억이 되리라.

글 사진 · 복진선(자전거이야기꾼 blog.naver.com/yangah68)

 

삼척 호산에서 남쪽으로 다시 시작

호산터미널에 내려서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조립한다. 페달질은 시작도 안했는데 땀이 비 오듯 한다. 외발이 레프티는 분해 조립이 항상 거추장스럽다. 터미널 매점 아주머님의 칭찬 아닌 칭찬이 이어진다. “아니 이걸 이리 야무지게 싸가지고 왔네. 내가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여기 얼씬도 못하게 하는데 이 양반들은 자전거를 깔끔하게 포장해 와서 하게 하는 거요.” “아. 네. 감사합니다.” 현지 분들의 친절인지 간섭인지 모를 이야기에는 균형 있게 리액션을 보여야 한다. 깊이 들어가면 과잉이고 무대응은 무시가 되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난처한 상황이 이어 질 수도 있다.

채비를 꾸리자마자 길 위로 나섰다. 호산터미널을 벗어나자마자 경상북도로 들어간다. 울진군이다. 울진삼척공비침투사건으로 유명한 울진이고 그 침투 지점이 바로 나타나는 고포라는 동네다. 고포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같은 마을이 경상북도와 강원도로 나뉘어 길 건너 집에 전화를 하는데도 지역번호를 눌러야 하는 웃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동네는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같이 바다에서 작업을 하고 미역도 생산하고 판매한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시대의 흐름에서 한참 비켜서 있는 굵은 철조망이 눈을 시리게 만들지만 그 너머 흐린 구름 아래 검파란 동해의 물결은 변함없이 장쾌하여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울진삼척공비침투사건에 대한 안내판이 나오고 고포가 나온다.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의 시작이다. 잠시 바다에 눈을 파는 사이 마을을 넘어가는 언덕이 나타난다. 해안가나 섬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짧고 굵은 업힐이 끝없이 이어짐을 의미한다. 고포를 벗어나는 길은 경사도가 15%는 족히 넘어서는 ‘벌떡 업힐’이다. 좌우로 핸들을 틀어도 처음만나는 언덕치고는 빡세다. 스피드가 없는 초짜들에게 언덕은 오직 인내의 장소일 뿐이다.

습기가 대기를 짓누르는 한낮에 바동거리고 올라가니 땀과 벅찬 숨이 동시에 나를 압박한다. 급한 언덕에 대한 묘한 반항심이 이어진다. 헉헉거리지만 결코 내리지 않았다. 아무리 해안가 언덕이라고 해도 급하고 길다. 그래도 버티고 꾸역꾸역 페달을 눌러댄다. 그제야 저기 고갯마루가 살짝 얼굴을 비춘다. 이제 죽변항을 향해 달릴 차례. 하지만 내리막의 시원함도 잠시, 다시 해안가의 길이 이어진다. 혹자는 이 길에 언덕이 많고 경사도 심하고 지루하다고 불평하지만 자전거라는 탈것 자체가 갖는 속성이자 아름다움이 아닐까?

길은 옛날 국도를 따라 가기도 하고 마을로 내려가던 작은 길들을 따라 바닷가를 옆에 끼고 이어지기도 한다. 가끔 공도와 길을 공유하기도 한다. 쇠락한 바닷가 시설들이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을, 결코 쉽지 않았을 해변의 고단함을 말해준다. 멀리 대게의 고장이라고 말하는 죽변이 보인다. 죽변항에서 최근 미디어의 소개로 유명해진 볶음짬뽕집을 찾았다. 노부부가 운영하기에 단출한 메뉴를 제공하고 손님의 셀프서비스에 많은 것을 의존하지만 여름 막바지 휴가철 가게는 길게 줄 선 손님들로 미어터진다. 20분을 넘게 기다리고서야 짬뽕 한 그릇을 받아든다.

 

역사가 담긴 죽변항

죽변은 동해안의 기준이 되는 오래된 항구다. 자전거길을 타는 여행자들은 근처 관광지나 명승지를 들르지 않는다. 거길 들리면 그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니 그냥 안장에 앉은 채 표지판만 보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작심을 하고 죽변등대를 찾았다. 이 등대는 우리나라 현대 건축물의 시작을 알리는 구조물 중 하나다. 당시 세워진 많은 등대 중 죽변등대는 1907년에 러시아 함대의 남하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1910년에 처음 불을 밝히기 시작해 지금도 선박들에게 불빛을 선사한다. 무려 100년이 넘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녹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죽변에서 울진까지는 제법 긴 고개 하나를 넘으면 그만이다. 작게 이어지는 고개가 있지만 이제 익숙한 지형이다. 울진은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청정 지역이다. 불영계곡에서 내려온 커다란 물줄기는 왕피천을 만들어 동해로 달린다. 여기 저기 은어 낚시를 던지는 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결정판은 ‘은어다리’라는 커다란 구조물이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은어를 상징하고 은어를 기념하는지 모르지만 다리 이름은 은어다리다. 굳이 인증에 의미를 두지 않기에  눈에 담고 길을 이어간다.

왕피천이 끝나는 지점에 망양정이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원래 망양정은 남쪽으로 더 내려간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철종 때 여기로 옮겼고 허물어진 정자를 복원해 지금의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국어2 고전’의 대표적인 시험문제용 글이었던 관동별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장소다. 송강 정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화려한 수식과 묘사를 자랑하는 가사문학의 절정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다. ‘은산을 꺾어내어 백설은 무슨 일인고’라는 구절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파도와 물보라를 일컫는 말이다.

평범한 길이지만 바로 무수히 작은 언덕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망양정이 없는 망양휴게소에는 관광객들의 발길로 붐볐다. 인파에 휩쓸리기는 딱 질색이라 힘들게 올라온 길을 쉼 없이 내려선다. 해안가로 이어진 길옆에는 옛날 망양정이 있던 자리에 다시 정자를 세웠다. 이미 사실로 굳어진 역사를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원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오리라 믿는다.

울진비행장 언덕을 오르고 비행장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하룻밤 노숙을 정할 시간이 다가온다. 가능하면 고래불국민야영장에서 1박 하려 했지만 여기서 멈춘다. 구산해변오토캠핑장이 오늘의 박지다. 부재중인 관리인은 자신의 로망이 자전거 여행임을 알리고는 편히 쉬라고 말한다. 월송정 너머 작은 삼거리 상가에서 과분한 저녁으로 하루의 피곤함에 위로를 전한다. 과연 내가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이 공간은 이대로 기억 속에 남아있을까? 월송정 주변의 어두운 시골길을 헤드랜턴으로 비추며 돌아와 자리에 눕는다.

 

일상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는 영덕, 포항

어제부터 사그락 사그락 금속성 마찰음을 내던 브레이크를 손보지만 쉽지 않다. 전체적으로 교체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볼트와 와셔의 체결상태가 만족스럽지 않다. 어느 정도 교정을 하니 훨씬 좋아졌다. 하루의 출발이 좋다. 디스크 브레이크 정렬은 쉽지 않은데 라이딩에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 정비는 된 모양이다. 후포에서 고래불해변을 거쳐 축산항을 넘고 강구항을 지나면 오늘의 목적지이자 동해안 자전거도로 기행의 1차 목적지인 포항에 다다르게 된다. 후포까지는 전형적인 동해안 해안 마을을 따라 이어진다. 온 동네가 대게 조형물을 걸어놓고 이곳이 대게의 본산임을 자랑한다. 작은 공원에 대게 잡이 장면을 복원한 조형물을 설치하고 여행객의 발길을 잡고 있다.

울진에서 영덕에 걸친 해안 마을들의 아름다움은 일상 같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굳이 외지인을 위해 화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년손님’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후포는 최근 울릉도로 가는 배편이 신설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리 유명세를 타지 않는 작은 식당을 찾아 아침 해장을 시도한다. 메뉴는 역시 곰치국이다. 같은 동해안이라도 곰치국도 천차만별이다. 여기는 맑게 끓이는 게 주 메뉴인 모양이다.

그림 같은 고래불해변을 지나면 저 멀리 축산등대가 손짓한다. 물론 그 등대에 가려면 바로 앞의 언덕은 필수다. 사람 드문 해안 마을에서는 물이나 음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몇 번 당했기에 가게가 보이면 일단 들어가서 당류와 음료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 담는다. 축산항을 돌아가면 이제 영덕으로 향한다. 포항에 가까울수록 바닷가는 사람들로 넘치고 조형물들은 거대해진다. 감동은 커녕 호감을 주지도 못해 아쉬운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덕해파랑공원 앞에서 자전거 기념 샷을 한 장 찍고 바로 핸들을 돌린다.

아름다운 미항으로 기억되던 강구항에 이르러서는 번잡함의 절정을 맛본다. 온 천지가 대게집으로 변했고 길을 가득채운 차량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죄지은 양 황급히 대게도시를 빠져나간다. 강구는 내 동창의 고향이다. 그 친구 덕분에 3-4번 이 곳을 방문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 아름다움이 이번 여행으로 싹 가시고 말았다. 앞으로 찾아오기 힘든 곳이 되었다.

포항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두 가지 풍경이 공존한다. 과거 수산업과 관련된 건물들은 이제 폐허로 남았다. 한쪽에는 카페와 모텔들이 들어선다. 전형적인 이 땅의 개발의 흔적과 현실이다. 한쪽에는 지난날의 모습이 눈길을 끌고 다른 쪽에는 거대한 소비시장의 주변부가 만들어지고 있고 사람들이 이를 소비하고 있다. 자연이 내려준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 결국 인간의 짧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시설들이 자리 잡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다시 바닷길로 내려서면 그림 같은 작은 해변이 이어진다. 상의 지퍼를 내리고 온몸으로 바닷바람을 맞는다. 저 멀리 포항을 상징하는 제철소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포항까지 420km 거리를 4일 동안, 정확하게는 1박2일씩 2번에 걸쳐서 바이크패킹으로 여행했다. 이전의 해외바이크패킹과는 달리 짧게 2번에 걸쳐 진행한 이번 라이딩은 자전거여행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배움을 안겨주었다. 자전거 생태계를 이해하고 동해안의 캠핑 환경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화장발 없는 동해안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모든 여행은 존재의 확인이고 감정의 공유를 통한 소통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내 존재를 거칠게 확인해주는 자전거와 시퍼런 동해의 만남이 그 이번 여행의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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