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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현 박사 칼럼 _ 산위의 철학자 ③

 

Top Climber

유능한 등반가, 성실한 등반가

일급의 등반가, 톱 클라이머

 

글 · 공용현(철학박사, 전 한국등산학교 총동문회장)

 

 

등반을 하나의 문화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등반행위를 곡예(acrobatics)을 넘어 예술의 형태로 파악하고, 윤리와 도덕이 구현되는 실천의 장(場)으로 표현한다. 또한 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직접적이고 순수한 체험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나아가 프리솔로처럼 신앙의 경지까지 끌어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음악과 문학 그리고 종교의 영역에서 나타난 위인들, 예를 들어 슈베르트(Franz P. Schubert), 엘리어트(Thomas S. Eliot),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등반계에 있는가. 만약 있다면 이런 수준에 올라선 등반가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등반가1), 즉 클라이머들 중에서는 간혹 ‘톱 클라이머’ 혹은 ‘일급의 등반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톱(top)’, ‘일급(first class)’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비범한 기량을 지니고 있고,  등반사의 한 획을 긋는 발군의 성과를 올린 사람이다.

그들은 자이언트급의 험준한 설산을 무산소로 등정하고, 5.14(YDS)가 넘는 고난도의 암벽 루트를 맨손으로 선등한다. 평범한 등반가의 경우 극한 상황에서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고봉이나 거대 암벽의 바윗길을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산악평론가들은 등반가의 이와 같은 ‘유능함’과는 다른 내용을 강조한다. 그들에 의하면 올바른 인간관과 산악관을 지닌 등반가는 객관적인 능력과 표면적인 성과를 넘어 더욱 훌륭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등반능력 이외의 측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산에 대한 전체적 태도나 신념에 관련된 자질이며, 아마도 ‘성실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성실한 등반가를 톱 클라이머나 일급의 등반가로 부르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일까.

이 물음은 등반가의 등급을 따지는 단순한 질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진부하게(trivial)보이는 질문의 바탕에는 등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알피니즘의 정체성(identity)를 되묻는 진지한(genuine) 과제가 깔려있다.

 

등반가의 유능성은 육체적, 정신적 능력 모두를 가리킨다. 등반 체력과 기술은 물리적 제한과 과학적 경계를 넘어 인문학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철학적 신념으로까지 연결된다.

 

등반가의 능력이란 무엇보다도 그의 강인한 체력에서 비롯된다. 이점은 다른 일류의 운동선수에게 요구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이 한편으로 타고난 자질로서 선천적인 조건에 기인하고 다른 한편으로 후천적인 훈련에 의해 다듬어진다는 점도 일반 스포츠와 유사하다.

그러나 육체의 힘과 기능이 다른 스포츠보다 등반에서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등반이란 비상한 환경 아래서 펼쳐지는 종합적인 전신(全身)운동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육체적 조건이나 경기 규칙에 의해 분화된 일반 스포츠보다 훨씬 더 체력조건의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클라이머에게 있어 타고난 건강한 육체와 강인한 체력은 무엇보다도 귀한 자연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고도의 등반 행위를 완벽히 수행할 수 없다. 일급의 등반가가 목표로 하고 있는 고산이나 암벽은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대상이다. 등반가의 모험과 도전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산은 빈번히 인간 능력의 극한을 시험한다. 산소가 부족한 눈과 얼음의 고봉에서 등반가들은 추위와 바람에 시달리며 자주 체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이 점은 암벽등반에 있어 분명해진다. 클라이머가 자신의 현재 능력을 넘어서는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암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루트 중에 도사린 크럭스(crux, 최난지점)를 돌파하기 위해 수개월 내지 수년이 넘는 악력배양 훈련을 이겨내야 하는 경우가 흔하며,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 식이요법을 통한 체중감량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때도 많다.2) 어찌 보면 단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집중시켜야 된다는 점에서 암벽등반이 고소등반보다 더 강한 체력을 요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최고 수준의 암벽등반가들은 순식간에 결정되는 암벽등반의 성공을 위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체력훈련에 할당하고 있다.

 

클라이머의 몸 만드는 과정은 마치 도 닦는 수도자의 그것과 흡사하다. 수도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속세의 욕망을 버리듯 일급의 등반가는 ‘최고의 육체적 상태’를 얻기 위해 일상생활의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한다.

 

육체적 능력 외에 등반가의 유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그가 지닌 기술적인 측면이다. 등반가의 기술함양은 체력훈련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한 부단한 기술연마는 고산이나 암벽에서 마주치는 곤란한 상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빙하와 크레바스는 어떻게 건너가야 하는가. 눈사태가 잦은 설사면은 어떻게 올라야 하는가. 빙벽에 어떤 확보물을 어떤 식으로 설치해야 하는가. 고산에서 이 같은 기술적 역량의 유무는 등반의 성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암벽등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능한 등반가는 각양각색의 암벽 형태를 관찰한 후 가장 적절한 루트를 선택한다. 손이나 발이 안전하게 걸칠 수 있는 홀드나 스탠스의 유무를 판별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신의 능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최선의 동작을 고안해낸다.

어디쯤 스탠스(stance)를 멈추고 다음 무브(movement)로 옮길 것인가. 이 동작을 지탱할 만큼 암질이나 바위 표면의 상태가 좋은가. 크랙(crack)에 끼워진 손가락 마디가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체중을 지탱할 수 있는가. 여기가 확보물을 설치할 최적의 지점인가. 이런 즉각적인 판단과 뒤따르는 반사적 동작은 고도의 숙련을 요구한다.

이런 기술적인 능력은 유능한 등반가와 그렇지 못한 등반가를 확연히 구분한다. 일급의 등반가가 수직의 암벽에서 펼치는 등반 동작을 보라. 얼마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우아하기조차 한가. 적절히 힘을 안배하며 일반인들은 거의 감지 못할 ‘바윗길(rock routes)’을 신중하고, 때로 과감하게 거침없이 타고 오른다. 이런 기술적 능력은 단순히 뇌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육화(肉化)된 기술, 즉 손끝에서 발끝까지 그의 전신에 스며들어 있는 노하우이다. 그에게 있어 손끝은 단순한 피부가 아니라 하나의 ‘보는 눈’이며, 그의 발끝은 또 하나의 ‘정밀한 저울’이다.


조각가 무어(Henry Moore)는 “인간의 손은 정신의 칼날”이라고 했다. 등반가의 손과 발의 기능을 이렇게 적절히 표현한 말은 드물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등반가의 지체(肢體)는 곧 그의 정신이자 혼(魂)이다.

 

이런 기술적 능력은 이론적 탐구를 통해 비약적으로 증진된다. 개인의 강인한 체력과 반복되는 경험만으로는 등반가의 총체적 능력 향상에 뭔가 부족하고, 등반 성과를 최고도로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일급의 등반가는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을 수시로 비교, 검토함으로써 더욱 탁월한 등반 경험 및 기술을 간접 체험하고, 그것을 실제 등반에 응용함으로써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기술적 능력이라기보다 이론적 능력이며,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산악문화 전반을 개관(槪觀)하고, 여기서 통용되는 등반 용어와 표기법에 익숙해야 한다.

일급의 등반가는 등반에 관련된 지식을 폭넓게 습득하기 위해 언제나 새로운 등반 형식, 장비의 개발상황, 최신의 등반보고에 관심을 기울인다. 어떤 산봉우리를, 어떤 루트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올랐는지를 세밀히 분석하고, 그 등반성의 가치를 음미하며 새로운 도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등반가의 이론적 능력에 또 하나 덧붙여야 될 것은 그가 자신의 등반체험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급의 등반가는 (성공했건 실패했건) 자신의 등반에 대해 다른 등반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정보에 의해 도움을 받았다면 마찬가지로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동료 등반가에게 자신의 등반대상, 등반방식, 등반성과에 대해 정확하고 솔직한 기록을 제공해 주어야만 한다. 이 기록이 반드시 저술이나 체계적인 보고서의 형태를 갖추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일류의 등반가로 자처하는 자가 등산보고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면 그는 한갓 이류의 산꾼이나 산쟁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최고 수준의 등반가는 이런 이론적 능력을 교육적 능력으로까지 발전시킨다. 훌륭한 등반가는 자신의 등반능력을 자신의 소유로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고산과 암벽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이론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를 원한다. 산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창조적으로 분석 종합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전수하는 기술-이것이야말로 등반가의 모든 기술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어찌 보면 일급의 등반가란 산악 지식의 발굴과 보존 그리고 전승에 가장 유능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등반의 체력과 기술은 유능한 등반가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직성, 책임감, 겸손함과 같은, 한마디로 말해 등반가의 성실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 산에 접근하는 등반가의 심성과 품격은 진정한 산악인과 천박한 산악인을 가르는 명백한 기준이다.

 

성실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등반가가 산을 대하는 정직성에서 드러난다. 성실한 등반가는 등반을 수행하는 동안 결코 부정직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과를 과장하거나 합리화하여 등반의 순수성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프리 클라이밍을 추구하는 자가 목표로 하는 루트를 오르기 위해 자연상태의 암벽에 인공적으로 홀드를 만들거나, 인공 보조물에 몸을 의탁해서 거길 올랐다면 그는 이미 정직한 등반가가 아니다.

산은 언제나 등반가로 하여금 산으로 향하는 첫걸음부터 엄격하게 그의 정직성을 시험한다. 산이란 거짓된 행동과 얄팍한 술수가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설령 그가 부정직한 방법으로 고난도의 암벽을 올랐다고 해서 실제로 그의 능력이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있지도 않은 극한 상황을 끌어들인다고 해서 그의 성과가 세간에서 평가되는 만큼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등반성과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는 애당초 불가능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등반은 본성적으로 집단(team)이나 보편자(universals)가 아닌 단독자(individuals)이자 헐벗은 개체 (bare particulars)의 활동이고, 그 행위의 가치에 대한 궁극적 심판자는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과 성과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부정직한 등반행위로 인하여 자신의 등반능력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될 때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위와 기만이라는 악덕에 빠지게 될 때 등반가로서의 삶은 사실상 끝나는 것이다.

산악계에서 공인되는 등반성의 평가에 대한 규준(規準)은 다른 영역에 비해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최고봉을 무산소 단독으로 올랐다든가, 최난도의 암벽코스를 개척했다고 해서 적절한 검증이 안된 자를 무조건 일급의 클라이머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산악인의 정직성은 지적 정직성이나 도덕적 정직성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어렵고 힘든 산행만이 가르쳐주는 독특한 것으로, 육체와 정신을 모두 포괄하는 정직성이다. 이렇듯 영육(靈肉)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하며 동시에 행위의 규범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인간활동이 다른 곳에는 없다.

 

나는 등반가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정당한 방법으로(by fair means)’, ‘곧바로 오르는 것(direttissima)’, ‘무상의 행위(useless behavior)’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표어들은 멋지고 감동깊게 들리지만, 이처럼 산악인들을 도취시키고 기만하는 표현도 없다. 첨예한 등반의 역정을 ‘되살고(再生, re-live)’, ‘정격등반(正格登攀, authentic climbing)’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등반가를 현혹한다. 진짜로 산에서 이렇게 행동하다가는 등반에 실패하거나 죽기 십상이다.3)

또한 의식적인 등반활동에 ‘무상(無償)’이라는 ‘동인(動因)’은 없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테레이(Terray)의 <무상의 정복자(Les Conquerants de l'inutile), 1971>에도 무상의 등반은 없다. 등반관이 지금처럼 변질되기 전에는 등산가의 목표가 부귀, 권력, 명성(名聲)이 아닐 수도 있었다.4) 하지만 그런 등반에도 자아성취(혹은 도취나 희열)의 욕망까지 숨길 수는 없다. 아무리 무상의 행위를 표방해도 적어도 “내가 무상의 등반가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그 마음만은 버릴 수 없다. 이게 바로 ‘명예(名譽)’의 감춰진 진실이고, 어쩔 수 없는 인간 실존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fair means’, ‘direttissima’, ‘useless behavior‘가 등반의 준칙(準則)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비록 북극성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밤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의 길잡이가 되듯, 우리 산악인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이자 영원한 꿈과 이상이기 때문이다.

 

성실성의 다른 측면은 아마도 일상적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성실한 등반가는 산에서의 삶이 전체적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급의 등반가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그와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해 커다란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낀다. 그는 산행에 필요한 경비를 자신의 힘으로 조달하고 자신의 등반 때문에 야기될지 모르는 가족과 이웃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 능력도 없이 때때로 가족까지 내팽개치고 마치 부랑자처럼 산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도착(倒錯)된 삶이다.

가끔 산생활에 경도된 나머지 일상적인 삶을 천박하게 여기는 등반가도 있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런 독단과 폐쇄성에 사로잡힌 등반가들을 ‘산에 미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때로 그들의 삶을 순수한 것이라고 미화하는 것이다.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산에서 미친 사람’이거나 ‘산 때문에 미친 사람’이지 ‘산 그 자체에 미친 사람’이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인생의 패배자나 낙오자이고 일상생활에서 충족하지 못한 원망(願望)과 욕구를 산에서 해소시키려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실패에 대한 위안을 산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도취의 시간이 지나면, 즉 그 ‘미쳤던’  시간이 지나면 어두운 현실은 의연히 그대로 오히려 더 강하게 그를 밀어붙인다. 이래서 마치 마약중독자가 약기운이 떨어졌을 때 더 강한 마약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들은 더욱 열광적으로 산으로 몰려가는 것일까.

 

어느 등반가도 등반이 끝나면 반드시 하산해야 되는 것처럼 산에서의 삶은 평소의 삶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산은 그가 받아들인 성실한 등반가를 더욱 강하고 충실한 인간으로 만들어 아래로 내려 보낸다. 훌륭한 등반이란 삶으로의 하강(下降)을 위한 비상(飛翔)이다.

등산은 산악인에게 활력과 위안(慰安, consolation)을 주지만, 육체와 정신에 대한 단순한 위로(慰勞, comfort)는 아니다. 산은 등반가에게 황홀과 경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흥분상태로 몰아가거나 미치광이로 만들지 않는다. 산을 통해서 그들의 삶의 숨겨진 의미를 일깨우게 하지만 결코 삶 그 자체를 이유없이 포기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등반은 결코 삶과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팔천 미터의 고봉도, 깎아지른 수직의 암벽도 그 뿌리를 평탄한 대지에 내리고 있듯 등반가의 모든 행위는 그를 감싸고 있는 전체적 삶의 캔버스를 채색하는 한 조각의 그림이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말한 대로 등반 역시 다양한 ‘삶의 한 양식(a form of life)’에 지나지 않는 것. 인생을 위해 등반이 있는 것이지, 등반을 위해 인생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유한 산생활(山生活)이 세속의 생활과 다른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도, 그 강렬함과 날카로움마저 그가 영위하는 일상적 삶의 후광을 받지 못한다면 빛바랜 낙엽처럼 쉽게 퇴색하는 법이다.

등반가의 성실성에 대해 또 하나 추가해야 할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도덕관에 관련된 것으로서 겸손과 경건이다. 일급의 등반가는 아무리 유능한 자 일지라도 오만무례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을 키워준 토양인 산악문화의 전통에 감사하며 그것을 보존하고 더 기름지게 하려고 노력한다. 선배에 대한 예의와 후배에 대한 친절은 그의 품위를 한층 높게 한다. 동료 산악인에 대한 신중한 언사는 그가 산에서 쌓아올린 인격의 중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을 기분 내키는 대로 떠들어댄다든지 자신이 최고의 전문가인 양 타인의 등반성과에 대해 함부로 경솔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이런 겸손함을 지닌 등반가가 인간과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등반의 성공을 가져다준 동료들의 용기, 배려, 봉사에 감사하고 등반가 사이의 존경과 사랑이 지고의 가치라는 것에 공감한다. 그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애착을 느끼고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등산을 통해 깨닫게 된 자연의 힘과 경이에 감탄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등반이 예술이나 신앙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등반가는 자연에 순응할 뿐 결코 정복자가 될 수 없다. 진지한 등반가에게 있어 산이란 아름다움에 대한 흠모의 대상이자 인격의 완성을 위한 최상의 수련장이다. 레뷔파는 <별빛과 폭풍설>에서 “등산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라고 표현하고, 테레이는 <무상의 정복자>에서 “등산에 있어 용기, 배려, 동료애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말한 ‘유능함’과 ‘성실성’은 일급의 등반가가 되기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산은 등반가를 시험하기 위해 종종 특별한 삶의 국면을 연출한다. 어느 윤리학이든 생명의 지속과 행복의 추구를 궁극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생사의 극한 상황이 펼쳐지는 장소는 통상적인 도덕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거기서 동료 산악인의 곤경과 죽음을 모른 체 했다고 해서 일반적인 윤리적 척도로 손쉽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은 신비스럽게도, 등반가에게 종종 초윤리(超倫理)를 요구한다. 비록 가혹한 ‘죽음의 지대’일지라도 일급의 산악인은 정상아래서 부상을 입고 신음하는 산악인을 외면하지 않는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동료와 함께 묶인 자일을 자르거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지는 않는다. 최선을 다했으나 그래도 역부족(力不足)이면 그냥 산의 품속에 안길 뿐이다. 모험에는 늘 죽음이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산악인의 고귀한 정신을 저버리고 목숨을 약간 더 연장한들, 그리하여 전체 등반가들의 평균수명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그게 무어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머메리, 말로리, 테레이 등 위대한 등반가 모두 등반하다 죽었다. 하지만 그냥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으로 사라졌으며, 죽은 후 불멸의 성좌가 되었다. 그들의 신념과 행위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들은 알피니즘에 대한 존중과 헌신을 통해 물신주의(物神主義, Fetishism)가 휩쓰는 현실의 틀을 과감히 깨고 나와 산악계의 앞날에 분명한 비전(vision)을 제시했으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바람직한 인간관과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만약 산악계에 신(神)이나 정령(精靈)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바로 아바타(Avatars, 化身)이자, 산의 이념(Idea of Mountain)을 실천하는 진정한 영웅이다.  

 

서문에서 예로 든 세 사람의 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5) 한 시대를 살다 간 등반가들 중에는 그들이 남긴 불멸의 발자취를 통해 산에 대한 영원한 갈망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산에서 격은 체험과 산악관은 지금의 산악문화를 형성했고 우리는 그들이 남긴 유산 속에서 등반의 가치를 찾고 인생의 진실을 추구한다.

그들이 전해준 숭고한 행위와 말과 글을 음미해보라. 그들은 고봉과 암벽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본 자들이다. 그들은 산의 높이를 무한한 것으로 만들고 거기를 오르는 인간의 능력 역시 무한한 것임을 보여준 자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산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엿보고, 어쩌면 그들이 건너갔을지도 모르는 영원한 세계의 한 모서리를 조망(眺望)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산이란 일회적인 삶이 그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춤의 한 마당이다. 모든 명인(名人)들이 그렇듯 그들은 모험과 도전이라는 치열한 등반가의 삶을 통해서 인생의 꼭대기까지 올라선 자들이다. 아마도 그 정점에는 등반과 학문과 예술 그리고 종교마저 하나일 것이다. 그 하나인 삶을 진지하게 살았던 등반가, 그리하여 산악인의 영혼 밑바닥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일급의 등반가를 우리는 최고의 위대한 등반가, 즉 톱 클라이머로 존경하는 것이다.6)

이제 우리나라의 등반역사도 유아기를 벗어났고 등반문화의 형성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패기와 야심에 찬 젊은 등반가들이 세계의 최고봉에 오르고 최난도의 암벽 루트를 향한 도전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인수 선인의 암벽을 오르는 수많은 등반가들, 그리고 지금도 해외의 어느 고봉과 암벽 아래서 등정의 꿈을 불태우고 있을 우리 등반가들을 생각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대, 우리나라의 유능한 등반가는 누구이며 성실한 등반가는 누구인가, 또한 톱 클라이머라고 불릴 수 있는 자 과연 누구인가.  있는가, 있었던가, 있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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