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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강선 KTX 산행

Season Special

르포2 _ 선자령

 

 

대관령마을휴게소~동해전망대~선자령~하늘목장길~대관령마을휴게소

그대 선한 눈매를 닮은

바람의 언덕

 

그깟 설한풍이 대수냐고, 도처에 우뚝 솟은 흰 바람개비들만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고원은 오를수록 평탄해졌다. 세찬 바람을 뚫고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자 어느새 선자령의 둥글고 순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착한 사람들의 눈웃음을 닮은 고갯마루였다.

글 · 민은주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바람이 길을 냈다. 물매진 언덕배기마다 모질게 눈을 쓸어내고 수목은 죄다 납작하게 때려눕혔다. 바람 들고나는 자리는 아무리 완만해도 만만찮은 법, 선자령(1,157m) 가는 길은 해발 840m에서 공짜처럼 시작하지만 하늘의 기분에 따라 고요한 산책이 되기도 험상궂은 모험이 되기도 한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바람 불던 날, 행여 동해까지 밀려날까 바싹 긴장한 채 휘청휘청 선자령에 올랐다.

 

KTX 경강선 타고 떠나는 은빛 설국

모두 들떴다. “많이 추울까요?”, “스패츠 없는데 어떡하죠?” 겨울산행 준비물을 체크하는 목소리가 사무실 천장 위로 노래하듯 날아올랐다. 본지 관리부에 근무하는 노주란씨와 미술부 소속 최미연씨가 경강선 특집 선자령 취재에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영동과 영서를 가로지르는 대관령 능선에 위치한 선자령은 눈과 바람의 이중주로 유명한 겨울산행 명소다. 내륙에서 불어오는 편서풍과 동쪽의 바닷바람이 맹렬하게 부딪쳐 폭탄처럼 많은 눈이 내리고 겨울 끄트머리까지 좀처럼 녹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선자령의 호사스런 설경을 찾아보던 두 사람의 눈동자가 호기심과 기대로 반짝거렸다. 최근 개통한 KTX 경강선을 타고 2018 동계올림픽대회가 열리는 평창군으로 간다는 사실도 설렘을 증폭시켰다. 강원도에 발효 중인 강풍과 건조주의보만이 멀고 조그만 걱정거리였다.

KTX는 과연 빨랐다. 8시 1분에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는 2시간 만에 강릉역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역사에서 산행 시작점인 대관령마을휴게소까지는 22km 남짓, 대중교통은 주말에만 운행한다하여 택시를 타고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이었다. 서울에서 선자령까지의 심리적 거리가 대뜸 가까워졌다.

“이거 너무한데?” 장비를 챙기는 사진기자의 목소리에 근심이 서렸다. 꽤나 오랫동안 눈 소식이 없었는지 대관령 자락이 온통 텁텁한 담갈색이었다. ‘아이젠 착용금지’라는 휴게소 앞 문구가 무색할 만큼 사방 어디에도 흰빛이 없었다. 선자령으로 가는 길은 양떼목장 담장을 따라가는 좌측의 계곡길과 우측의 능선길로 나눠졌다. “고원지대로 가면 눈도 남아있겠지”, 서로를 위로하며 갈림길에서 능선을 택했다. 통신탑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에는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견인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젠을 착용하기도 애매하게 듬성듬성 얄팍한 얼음을 피해가며 조심스레 산행을 시작했다.  

대관령 정상은 해발 840m 남짓, 선자령과 표고차가 300여m에 불과하다. 필연적으로 길은 느긋하고 순했다. 2km 남짓의 포장도로를 지나 산길에 접어들자 어느새 백두대간 등줄기에 은빛 설원이 펼쳐졌다. 비록 상고대와 설화는 없었지만 북면 비탈에 소복소복 쌓인 흰 눈이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반겼다. 동해전망대에서는 멀리 바다가 보였다. 어쩐지 가슴 한편이 후련해졌다.

 

선자령, 백두대간 흰 눈썹을 오르다

휘휘친친 감기는 바람이 채찍처럼 쓰라렸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바람을 피해 잠시 몸을 숨길 나무 한 그루도 마땅치 않았다. 상체를 숙이고 어깨를 접은 채로 묵묵히 걸었다. 폭풍의 언덕으로 가는 길, 동쪽에는 시퍼런 바다가 펼쳐지고 서쪽으로 첩첩히 겹쳐지는 구릉에는 새하얀 풍력발전기들이 거인처럼 솟아있었다. 풍차 날개가 돌아갈 때마다 거대한 그림자가 지상을 덮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윙윙 울어대는 날갯짓과 못지않게 난폭한 바람 사이로 탄식이 흘렀다.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선자령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선 때는 2006년 가을이다. 바람으로 날개를 회전시켜서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발전은 태양광과 더불어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 자원으로 점점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넓은 초지에서 연평균 초속 6.7m의 바람이 일정하게 부는 대관령은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 최적의 지역으로 현재 53개의 풍차가 연간 2억5000만kW 내외의 전기를 생산한다. 또한 풍차들은 우리 시대의 모아이처럼 기이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수십 미터 높이의 흰 바람개비가 유유히 돌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매우 근사한 경험이었다. 투명한 바람이 온 몸에 가득 차서 어떤 고민도 오래 머물지 못할 듯 머리가 개운해졌다. 물론 금세 발가락이 얼어붙어 풍차를 등지고 다시 걸어야 했지만.  

선자령 정상은 폭풍의 언덕이다.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몹시 추웠다. 휘휘 둘러보는 사방이 수십 개의 풍력발전기와 눈 덮인 백두대간 봉우리들로 첩첩했다. 주말이면 기념사진을 찍느라 긴 줄이 늘어서는 백두대간 선자령 표지석 앞도 추위 탓에 한가했다. 취재팀 또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세찬 바람에 떠밀려 발걸음을 서둘렀다.

짧고 미끄러운 급경사를 내려와 하늘목장 갈림길에 들어서자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다. 햇살이 한 조각 남아있는 눈밭에 자리를 깔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딱딱하게 굳은 빵과 미지근한 컵라면이 세상 무엇보다 달고 귀했다. 올라온 길이 유순했으니 내려가는 길도 험악할 리 없었다.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했다는 오붓한 계곡 길로 여유로운 하산을 시작했다. 양떼목장으로 이어지는 숲길에는 물푸레나무, 자작나무, 전나무와 잣나무가 사이좋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겨울 숲은 폭폭 쌓인 눈 속에 야생화 씨앗과 봄의 뿌리를 숨겨뒀으리라. “산철쭉 필 때 한 번 와봐야겠어요” 기자의 말에 “그 전에 눈꽃산행 다시 와야죠”  등 뒤 일행들이 크게 반박했다. 떠나는 이의 아쉬운 마음을 아는지, 철망 너머 양치기 개 두 마리가 꼬리를 붕붕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바람길, 눈길, 함께 해서 따뜻했던 길

방풍림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따라 다시 대관령마을휴게소로 내려오자 오후 3시 남짓, 10km가 넘는 길이지만 산세가 부드럽고 눈길이 폭신하여 힘들 겨를이 없었다. 기차 시간이 넉넉하게 남자 고민도 깊어졌다. 대관령 바람으로 촉촉하게 말린 황태해장국을 먹을까, 메밀냄새 향긋한 막국수를 먹을까, 맹렬하고 행복한 토론 끝에 일행은 강릉의 명물인 초당두부마을 짬뽕순두부를 선택했다. 얼큰하고 따끈한 국물로 언 몸을 데우고 기차에 오르자 금세 잠이 쏟아졌다. 굽이굽이 걸어온 바람길, 눈길이 모두 꿈처럼 아득했다. “겨울산은 처음인데 정말 좋았어요.”, “이제부터 자주 산에 다녀야겠어요.” 함께 한 이들의 미소만이 기쁜 선물로 남았다. 눈을 감기 전 오늘 걸었던 선자령 능선을 떠올려보았다. 옆자리 잠든 이의 선한 눈매를 닮은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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