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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벽

  

전남 남원 고남산 딴바위  상사바위

 

이름 없는 고수에게 묻는다

 

글 · 민은주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불이 꺼졌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반평생 몰두했던 등반을 접고 고향 남원으로 내려와 오이 농사를 시작했다. 한 시절이 뭉실뭉실 흘러갔다고, 이제는 끝났다고 받아들였다. 몇 년 후 동네에 인공외벽이 생겼다. 오가며 괜스레 심장이 뛰었다. 어느 날 슬쩍 로프를 묶어보았다. 손끝의 세포가 생선처럼 팔딱거렸다. 2016년 봄, 확장된 광주대구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고남산 기슭에 어른거리는 커다란 암벽을 보았다. 당장 산비탈을 직선으로 치고 올랐다. “너는 누구냐?” 희고 깨끗한 바위가 물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척을 시작했다. 마음속에 다시 불이 켜졌다.

 

바위를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

이루지 못한 사랑은 어찌 그리 흔한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상사바위가 늘비하다. 덕분에 와룡산 상사바위, 팔룡산 상사바위, 함안 상사바위, 통영 상사바위, 서럽고 애절한 이름의 암벽등반지도 수두룩하다. 2016년 겨울, 전남 남원 고남산 자락에 상사바위란 이름의 암장이 하나 더 생겼다. 상사병으로 실성한 처녀와 그 부모가 큰 바위에서 함께 떨어졌는데 죽은 처녀는 이후 커다란 지네가 되었다는, 어딘가 인과관계 아리송한 전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상사바위가 기꺼이 사모하는 마음이 생길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인 등반지라는 사실이다.

“돌기가 거의 없이 깨끗하고 매끄러운 화강암에 크림프와 슬로프 홀드들이 많습니다. 오버행과 페이스가 주를 이루며 5.10급에서 13급까지 다양한 등반을 즐길 수 있습니다.”

6개월 간 상사바위 앞에 숙식하면서 홀로 25개 남짓의 바윗길을 개척한 최윤오(남원클라이머스)씨가 애틋한 표정으로 등반 루트를 설명한다. 1966년생인 그는 26살 등반을 시작한 이래 참새 방앗간 찾듯 종종색색 바위를 쉼 없이 올랐다. 인수, 선인, 설악산은 말할 것도 없고, 선운산 등지에서 5.13급 스포츠클라이밍도 여럿 해치웠다. 매해 겨울마다 빙벽등반에 빠져 살았고, 안나푸르나 원정을 세 차례 시도해서 전부 실패한 아픈 추억도 있다. 2004년 안나푸르나 산군 한 가운데 위치한 텐트픽(Tent Peak 5,663m) 단독등반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후 2005년 서울등반대 4명이 가서 등정에 성공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치열하게 등반했던 사람이다.

삶은 예측불허다. 2010년 고향에 계시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최윤오씨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귀향을 결심했다. 자연스레 등반도 함께 정리됐다. 할 만큼 했다고, 그럴만한 시기가 온 것뿐이라고, 덤덤하게 전환점을 받아들였다. 4년 동안 최윤오씨는 남원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농사를 지었다. 잊으려 했고, 잊은 것도 같았다. 그런 다짐은 3년 전 남원 춘향골 체육공원에 인공암벽장이 들어서면서 허망하게 사라졌다. 다시 안전벨트를 차고 로프를 묶자 새로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고향후배, 외벽에서 만난 이들에게 등반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2016년 4월 우연히 상사바위를 보고 무작정 개척을 시작했다. 잠시 꺼져 있던 엔진이 맹렬하게 돌아갔다.

“3년 전 등반을 다시 시작하면서 제가 1997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했던 서울등반대의 이름을 남원클라이머스로 바꿨습니다. 아직 남원은 확보자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등반인구가 적어요. 새로 개척된 상사바위가 남원지역 사람들의 등반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남산 자락에 숨은 매콤하고 짭짤한 바위

“이런 바위를 어떻게 찾았을까?” 상사바위 앞에서 열두 번쯤 같은 말을 내뱉는다. 폭 60m, 높이 60m 만만치 않은 사이즈의 상사바위 어프로치는 백두대간 구간인 고남산 통안재에서 시작한다. 사방 어디에도 바위 따윈 보이지 않는 폭신하고 나긋나긋한 토산이다. 갈잎 바스락거리는 오솔길을 기분 좋게 걷다가 갑자기 가팔라지는 내리막을 조심조심 내려오면 그제야 딴바위와 상사바위의 거대한 옆면이 대뜸 코앞에 나타난다.

“새로 이어진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상사바위를 처음 봤어요. 커다란 바위가 햇살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데 한눈에 저건 물건이다 싶었죠. 그땐 길도 모르고, 그냥 바위가 보이는 데로 한 시간 정도 야산을 치고 올랐습니다. 나중에야 통안재에서 오는 짧고 쉬운 길이 있다는 걸 알았죠.”

너덜겅과 험한 비탈을 수시로 오르내리고 대부분은 바위 앞에 텐트를 치고 쪽잠을 자면서 모든 루트에 매달려 등반동작을 풀고 300여 개의 볼트를 고심해서 박았다. 개척이 대략 마무리될 때까지는 반년이 걸렸다. 덕분에 작년 농사에 거의 손을 놓았던 최윤오씨가 올해는 아예 오이하우스도 이웃에게 임대하고 상사바위 개척 마무리와 등반에 몰두하고 있다.

“균형 잡기 무서운데 바위는 또 까칠까칠하게 살아있고 아주 재밌어요.” “손끝 힘이 상당히 필요해요. 바위가 낯설고 홀드가 잘 보이지 않아 짜릿하네요.” 딴바위 애모(5.10b), 수채화향기(5.11b)에서 워밍업을 하고 상사바위로 건너온 김경락, 이필례, 안시현씨가 모두 만족감을 표한다. 상사바위의 동암OB(5.12c)를 온사이트로 오르며 몸을 푼 최소열씨도 균형감각, 루트파인딩 능력, 과감함이 모두 필요한 재미있는 루트라며 칭찬한다. 모두 부천지역 클라이머들의 모임인 벽오동 암벽회 소속의 등반가들이다. ‘4인의 우정(5.10c)’, ‘상사바위전설(5.10c)’, '홍천블루스(5.11b)'. ‘동암OB(5.12c)’, ‘관악산고물(5.13a)’ 등을 오르며 최윤오씨와 벽오동 클라이머들은 로프와 웃음을 주고받느라 바쁘다. 형님아우 허물없이 농담하는 모습이 마치 수십 년 함께 등반한 죽마고우 같다.  

“한 달 전 상사바위에서 처음 만났어요. 부천에서 등반하러 오셨다는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더라고. 그래, 우리 집으로 가서 닭 잡아먹고 하룻밤 같이 잤죠.”

클라이머의 관계가 그렇다. 바위 앞에서 스친 인연, 하룻밤 신세진 인연이 굽이굽이 길게 이어진다. “이거 안 되잖아. 어우 화나.” “어렵다. 와, 성질나는데?” 상사바위 중앙에 위치한 이름 없는 고수(5.13?) 시작지점에 최윤오씨와 최소열씨가 번갈아 붙어 강력한 볼더 동작을 푼다. 기합과 탄성, 웃음소리가 함께 터진다.  

 

이름 없는 고수들이여, 대답하라

“상사바위 루트명들은 나름 다 저한테 의미 있는 이름입니다. 이름 없는 고수는 제 별명이고요. ‘마운틴우먼(5.12c)’는 클라이머 박명숙씨를 생각하며, ‘동암OB(5.12c)’는 부산의 동암산악회를, ‘관악산고물(5.13?)’은 관악산에 여러 바윗길을 개척한 전용열씨를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에요. 새로 개척하는 루트에는 벽오동이란 이름도 붙여야지요.”

이름은 일종의 주문이다. 최윤오씨는 상사바위 바윗길마다 소중한 인연의 이름을 붙였다. 가능한 많은 클라이머들에게 상사바위를 선보이고픈 절절한 마음일 것이다. 아직 남원지역 등반기반은 약하지만, 이날 취재를 함께한 남원클라이머스의 이우성씨나 조규봉씨처럼 점점 열정을 가진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윤오씨는 현재 외벽에서 재능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8년에는 남원에 첫 실내암장을 오픈할 계획이고, 지역 기반 등반활성화를 통해 언젠가는 남원에서 걸출한 클라이머를 내놓는 것이 목표다. 7년 전 등반을 포기하고 남원으로 내려왔던 그는, 이제 등반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상사병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여 생기는 마음의 병을 뜻한다. 상사바위는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에 정신을 놓은 이가 떨어져 죽은 바위의 이름이다. 하여 남원에 새로 생겨난 상사바위 암장이 클라이머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네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냐? 세상천지 이름 없는 고수들이여,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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